[스티브 잡스 퇴장]국내 IT업계에 어떤 영향 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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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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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주도 특허소송 힘빠질 것”… 삼성전자 주가 급등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전격사임을 발표한 25일 세계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들은 그의 사임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관련 산업과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1976년 애플을 창업한 뒤 애플II로 퍼스널컴퓨터(PC) 돌풍을 일으키고 1997년 애플에 복귀한 이후에는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IT 및 미디어 산업의 전체 생태계를 뒤흔들어버린 이 시대 ‘아이콘’의 퇴장. 구글의 모토로라 휴대전화 부문 인수, HP의 PC 및 모바일 사업 포기 등 글로벌 IT 헤게모니가 급격하게 요동치는 가운데 IT 역사의 한 챕터를 닫는 이번 사건 뒤에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 국내 경쟁업체에 유리

잡스의 사임이 삼성전자 등 국내 전자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엄청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시장에서는 잡스의 사임이 한국의 경쟁업체에 유리하게 작용하리라는 분석이 많다. 잡스 퇴임 소식에 삼성전자는 장 초반 4% 가까이 급등했으며 결국 1만7000원(2.40%) 오른 72만5000원에 마감했다. LG전자는 1.27%, 하이닉스도 6.46% 올랐다.

잡스의 사임으로 애플이 전방위적으로 벌이고 있는 특허전쟁에서 힘이 약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애플은 최근 노텔을 인수하면서 기능과 기술 특허도 상당수 확보했지만, 구글 역시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하면서 기술 특허를 강화해 섣불리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이런 가운데 팀 쿡 등 새 지도층이 잡스처럼 카리스마 있게 특허전쟁을 이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잡스는 아이폰4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삼성전자에 대해 ‘모방꾼(copycat)’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아이클라우드’를 소개할 때는 경쟁사인 구글과 아마존을 깎아내릴 정도로 직설적이었다. 애플이 삼성전자 등 안드로이드 진영과 끈질긴 소송전을 진행하는 것도 잡스의 이러한 ‘독종’ 근성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많다.

○ 시장 개척자를 잃다

잡스의 사임이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대해 장기적으로 과연 호재인가 하는 데는 회의적인 시각이 나온다. 잡스는 애플 CEO로 복귀한 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줄줄이 대히트시키며 시장 개척자(프런티어) 역할을 해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그동안 애플이 혁신적 제품으로 시장을 열어놓으면 삼성이 부지런히 제품을 개발해 좇아가면서 혜택을 본 것이 사실”이라며 “잡스가 없다면 이제 누가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최근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종자)’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시장 개척자)’로 모바일 산업을 이끌겠다고 선언하기는 했지만 시장 개척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세계 1위로 올라선 TV 부문에서는 최근 발광다이오드(LED) TV의 마케팅 성공 사례에서 보듯 삼성이 시장 개척자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아직 스마트폰 및 태블릿PC에서 시장을 개척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 창의적 인재양성 ‘발등의 불’

애플이 흔들리고 IT 생태계가 급변할 때 국내 기업들이 좀 더 공격적으로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차세대 운영체제(OS) 개발과 인재 육성을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새 패러다임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문송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삼성으로서는 지금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며 “림(RIM)의 블랙베리나 노키아의 ‘심비안’ 등 여전히 점유율이 높은 OS를 인수해서 단번에 시장을 늘려가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잡스 같은 천재나 애플 같은 혁신적인 기업을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는 만큼 차근차근 IT 산업과 교육 경쟁력을 키우며 ‘포스트 잡스’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 혁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섣불리 따라하다가 기존의 하드웨어 부문 경쟁력까지 잃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장세진 싱가포르국립대 석좌교수는 “삼성전자가 당장 하드웨어 부문을 버리고 애플처럼 혁신 및 창조 중심의 기업으로 180도 바뀔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며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다음 세대에는 잡스 같은 인물을 낸다는 각오로 혁신과 창의력을 기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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