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3년 근무뒤 복귀 ‘수출입은행의 한비야’ 이혜경 아프리카팀 차장

  • Array
  • 입력 2011년 8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빨리 빨리’ vs ‘뽈레 뽈레(천천히 천천히)’… “처음엔 힘들었죠”

“내전과 기아로 허덕이는 곳에서 젊은 미혼 여성이 혼자 어떻게 살겠냐는 말을 많이 들었죠. 하지만 실제로 지내본 아프리카는 어지간한 선진국보다 훨씬 발전 가능성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 최초의 아프리카 여성 주재원인 이혜경 수출입은행 경제협력사업부 아프리카팀 차장(38·사진)은 1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여간의 아프리카 생활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말했다. 이 차장은 2008년 4월부터 이달 초까지 3년 4개월간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에서 수출입은행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업무 담당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남자들도 꺼리는 아프리카 오지 근무를 자원해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그는 동료들로부터 ‘수출입은행의 한비야’라고 불린다.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한 이 차장은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관계·국제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존스홉킨스대 시절 캄보디아에서 선거 모니터링 인턴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 그는 EDCF 전문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2001년 수출입은행에 입행했다. 2005년에는 휴직을 하고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개발협력 분야의 석사학위를 땄다.

“탄자니아 근무가 결정된 후 어머니는 하루 종일 우셨어요. 하지만 아프리카를 딱히 오지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전기, 수도, 인터넷 등 인프라 사정이 다소 열악하긴 해도 애초에 휴가를 간 게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어요.”

정작 이 차장을 힘들게 한 건 탄자니아 사람들의 ‘느긋한’ 국민성이었다. 탄자니아에서 그녀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뽈레 뽈레’(천천히 천천히) ‘함나 시다’(아무 문제없다) ‘케쇼’(내일)와 같은 단어였다. “한국에서는 계약서를 쓰면 당장 일부터 시작하지만 탄자니아에서는 ‘뽈레 뽈레’라고 미뤄요. ‘빨리 해달라’고 재촉하면 ‘케쇼’라고 답하지만 그 일이 실제 다음 날 이뤄지는 사례는 거의 없었어요.”

EDCF의 돈을 빌리는 주체는 탄자니아 재무부다. 재무부 관료들과의 협상도 만만치 않았다. 계약서의 사소한 문구 때문에 며칠간 차관계약 협상이 지연되거나, 사석에서 만났을 때는 ‘하겠다’고 한 일을 협상 장소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절대 못 한다’는 관료가 많았다. “제 역량의 한계인가 싶어 괴로웠죠. 다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탄자니아 생활이 2년을 넘어가자 그녀를 대하는 현지인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까워지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친해지면 깜짝 놀랄 만큼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마지막 1년은 일이 정말 잘 풀려 저도 놀랐어요. 일개 주재원인 제가 자카야 키퀘테 탄자니아 대통령만 3번을 만났습니다.”

특히 한국에 대한 현지인들의 호의적인 태도는 그녀에게 큰 힘을 줬다. “탄자니아 공무원들도 한국이 유일하게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의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뀌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한국처럼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겠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귀국하기 전에 그녀와 절친했던 한 차관보는 “애플의 아이폰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가 훨씬 좋은 스마트폰이니 한국에 가면 꼭 갤럭시를 쓰라”고 조언해 주기도 했단다.

이 차장은 앞으로 더 많은 한국 기업이 희소금속, 금, 다이아몬드 등이 풍부한 탄자니아에 진출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내전과 기아에 시달리는 서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와 달리 탄자니아는 내전과 종족 갈등도 없고 매년 경제 성장률이 7∼8%에 이르는 등 발전 가능성이 풍부한 국가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와 기업이 공격적인 자원 외교에 나서고 있지만 중국 상인들의 ‘극성’ 영업 때문에 일각에선 반(反)중국 정서도 존재하는 만큼 한국에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들이 한때 브릭스나 중동에 많이 진출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이 지역들의 성장세도 주춤해지지 않았습니까. 이제 아프리카에서 성장동력을 찾는 기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