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주식은 팔면서 되레 채권은 대거 사들였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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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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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장 얼마나 머물까” 아직은 불안불안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는 가운데 외국인이 한국 채권을 대거 매수하는 현상이 반드시 긍정적인가?

정부와 경제전문가들은 외국인이 한국의 투자가치를 높게 본다는 증거라고 반기면서도 언젠가는 갑자기 한국시장을 떠나 버릴 수 있고 장기적으로 시장금리를 높이는 출구전략을 추진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러워한다.

금융시장에서는 최근 원화채권을 사들이는 세력이 수익률에 민감한 유럽이나 미국의 금융자본이 아니라 중국이나 카자흐스탄 등의 중앙은행인 것으로 추정돼 지금까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많다는 시각이 있다.

○ 겉으로는 반색, 속으로는 ‘혹시’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최근 외국인의 주식 투매로 지수가 폭락할 때 “채권은 사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을 떠나는 것 같지 않다”고 수차례 밝혔다. 증시의 한 축인 주식시장이 무너진 반면 다른 축인 채권시장이 튼튼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 외국인은 8일과 9일 이틀 동안 9400억 원에 이르는 현물채권을 사들였다. 외국인의 상장채권 투자금액은 84조 원대를 훌쩍 넘었다.

이처럼 정부는 외국인의 채권 매수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도 속으로는 꺼림칙해하고 있다. 주식을 판 외국인이 채권으로 갈아탔다는 증거가 없고 채권을 산 외국인이 장기 투자자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가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투자 목적이 뭐냐고 물어볼 수도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외국인이 최근 사들인 원화채권의 만기를 보면 이들이 얼마나 오래 한국시장에 머물 것인지를 가늠할 수는 있다. 외국인이 사들인 채권 가운데 만기가 5년 초과∼10년 미만인 장기채권의 비중은 올 상반기 1.3%에 그친 반면 7월 이후 현재까지는 30.2%로 급증했다. 국내 채권 금리가 높은 편이어서 매력적이라는 점이 부각된 것이다. 하지만 만기가 비교적 짧은 1년 초과∼2년 이하짜리 채권의 비중도 최근 29% 정도로 급증한 점을 보면 꼭 장기 투자라고만 볼 수도 없다.

무엇보다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진 미국과 등급 하향조정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 국채에 매수세가 몰리는 점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채권 투자가들이 뚜렷한 방향성 없이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 주식자금이 옮겨온 것은 아니지만…

금융계는 최근 원화채권을 대거 매입한 외국인은 중국 말레이시아 카자흐스탄 등지의 중앙은행인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 주식 투자비중이 높은 미국 및 유럽계 펀드가 일부 있긴 하지만 원화채권을 사들이는 세력의 중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채권으로 갈아탔다’는 논리가 성립하기 힘든 이유다.

이 때문에 외국인의 주식 매도대금이 일시적으로 한국시장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장기적으론 한국 채권시장에 대한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다. 신동준 동부증권 투자전략본부장은 “분산 투자를 철칙으로 하는 외국계 기관이라면 금리가 높고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한국의 채권을 일정 비율 이상 사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채권시장이 과열되면 경제가 안정된 뒤 출구전략을 추진하기 힘들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한다. 금리를 올려 시중자금을 흡수하려 해도 외국인의 원화채권 투자가 대규모로 이어지면 시중에 자금이 넘쳐나 물가가 오른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외국인의 채권 투자가 과도해지면 세계경제가 불안할 때 한국에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해 위기가 올 것이라는 식의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 수도 있으니 당국이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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