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2년새 8000만원 ‘쑥’… “도저히 감당 못해 방 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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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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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난에 우는 서민들

“신혼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무능한 남자친구로 보이는 처지가 답답합니다.”(예비신랑 송모 씨)

“적금을 부어가며 나름대로 대비한다고 했지만 터무니없이 오르는 전세금에 가위눌려 쫓겨나듯 이사해야 하는 심정을 정부가 알아야 합니다.”(직장인 이모 팀장)

빠듯한 자금에 전셋집을 구하지 못한 예비 신혼부부가 결혼 날짜를 미루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세금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직장 근처 집을 내줘야 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전세난 고통을 호소하는 서민들의 증언은 비명에 가깝다.

○ 살집 못 구해 결혼 미루는 예비 부부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중소업체에 다니는 송모 씨(28). 그는 얼마 전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크게 다퉜다. 11월 초에 결혼하기로 하고 예식장까지 정했지만 신혼살림을 차릴 전셋집을 구하지 못한 탓이다. 송 씨는 “결혼 날짜를 미루고, 신혼집을 전세에서 월세로 바꿔 찾자고 했더니, 여자친구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며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여자친구나 예비 장모님께 능력 없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며 우울해했다.

송 씨가 전셋집을 구하기 시작한 것은 전세난이 절정이던 올해 1월부터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내가 살 집은 내가 구한다”는 생각으로 은행대출을 포함해 5000만 원을 마련했다. 턱없이 부족한 돈이라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정도 액수로는 서울에서 소형 아파트는커녕 원룸 오피스텔도 구할 수 없었다. 서울 강남구 전역은 엄두를 낼 수 없었고, 동작구와 관악구 일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대부분 1억 원을 훌쩍 넘거나 싼 곳도 7000만∼8000만 원 이상을 요구했다. 강서구에 사무실이 있는 예비 아내의 출퇴근을 고려해 교통망이 닿을 수 있는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와 안양지역도 알아봤지만 그곳에서도 두 사람이 마음에 드는 집의 전세금은 최소 6000만 원을 넘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전세금이 싼 곳을 찾아 경기 외곽지역으로 갈 수도 없었다. 출근이 두 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결국 송 씨는 여자친구를 설득해 전세를 포기하고 월세로 집을 구하기로 했다. 더 늦춰봐야 전세금이 떨어질 가능성이 없어 보이자 여자친구도 받아들였다. 결혼날짜도 12월 중순으로 늦췄다. 송 씨는 “그동안 쏟아낸 정부의 전세난 대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해 전세금 상승세가 계속되는 만큼 보다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회사 근처 집 떠난 직장인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 지역의 한 건설회사에 다니는 이모 팀장(42)은 그동안 회사 근처 아파트에 전세로 살다 올해 5월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유턴’했다. 2년 새 8000만 원이나 뛴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걸어서 다니던 출근길이 차로 편도 1시간 30분 이상 걸리는 ‘고생길’이 됐다.

이 팀장은 외식비, 기름값 등을 아낀 돈으로 적금을 부어가며 나름대로 대비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전세금 상승에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그는 “서울에 직장을 두고 전세를 살던 집주인도 오른 전세금을 대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며 “2년 새 8000만 원을 만든다는 건 평범한 직장인에게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 뚝 끊긴 거래에 한숨 쉬는 중개업자

“최근 한 달 동안 계약 한 건도 성사 못 시켰어요. 파리만 날렸어요.” 4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H공인중개사무소 대표 조모 씨는 사무소를 찾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15년간 공인중개사로 일해 온 조 씨는 “1998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고도 덧붙였다. “일대에서 비교적 위치가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우리 사무소가 이런 상황인데 골목 안쪽에 있거나 규모가 작은 사무소는 더 어려울 것”이라고도 했다.

조 씨는 사상 최악의 거래 부진에 대해 전세금의 비정상적인 상승에서 원인을 찾았다. 정부가 ‘반값 아파트’라며 보금자리 주택을 쏟아내자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청약 기회를 기다리며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눌러앉으면서 전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인근에 위치한 전용면적 84m² 아파트의 전세금이 올 들어서만 평균 3000만 원이 올랐고, 입주한 지 2년 미만인 새 아파트는 4000만∼5000만 원까지 뛰었다.

이건혁 기자 realist@donga.com  
염유섭 인턴기자 서울시립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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