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5년만에 남은건 빚더미와 소송… 어느 영업사원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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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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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와 소매점에 ‘쩔쩔’ 두 甲을 모시고 살았다”

경남 밀양시 삼문동에 사는 임하용 씨(33)는 2005년 3월 롯데제과 밀양영업소의 영업사원이 됐다. 영업이 적성에 맞아 열심히 일했지만 지난해 사표를 던졌다. 그런 그에게 남은 것은 빚더미와 롯데제과가 제기한 소송. 어찌된 일일까.

입사 후 첫 근무지는 밀양시 인근 창녕군의 소매점이었다. 월 목표액은 2000만 원. 데면데면한 사이인 구멍가게 주인들과 친해지는 게 급선무였다. 임 씨는 판매대를 둘러보는 김에 수시로 청소까지 했고, 가게 주인이 이사할 때면 소파나 세탁기를 차에 실어 날라줬다. 차츰 주문량이 늘었다.

재미있게 일하면 실적도 좋은 법. 1년 반 뒤에는 밀양 시내를 맡게 됐다.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있었고 중형마트도 10곳이 넘었다. 규모로 따지면 창녕군과 비교할 수 없었다. 자연히 타사와의 경쟁도 심했고 월 목표액도 4000만 원으로 높아졌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가게 주인들은 매번 과자 납품가격을 후려치려 했다. 회사가 정한 기준가격이 있기 때문에 실랑이를 벌일라치면 “앞으로 물건 넣지 마”라고 을러댔다. 임 씨는 항상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몽쉘통통’(롯데제과) 주세요”라고 말하는 충성스러운 소비자는 거의 없어 가게 주인들이 압도적인 ‘갑(甲)’이기 때문이다.

월말 회사에 입금해야 할 목표액을 맞추지 못한 영업사원들은 가게 주인들의 집중공격 대상이었다. 1개에 5000원 하는 ‘자일리톨’ 껌 48개들이 1상자의 정가는 24만 원이다. 본사는 영업사원들에게 정가에서 40% 할인된 14만4000원을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하지만 가게 주인들은 반값은 기본이고 월말이면 60% 할인된 가격(9만6000원)까지 요구했다.

회사 기준가격을 밑도는 출혈 판매가 계속됐다. 회사 납입금 중 모자라는 부분은 개인 돈으로 메웠다. 장부도 조작했다. 과도하게 할인한 부분을 ‘외상’이라 표시해 수금에서 문제되지 않게끔 만든 것. 해가 지날수록 임 씨가 물어야 하는 돈과 가짜 외상은 늘어났다.

임 씨는 결국 지난해 8월 사표를 냈다. 그러자 롯데제과는 “5079만 원을 갚으라”고 통보했다. 외상으로 허위 표시했던 금액을 모두 합친 것이었다. 임 씨는 “과도한 목표를 맞추기 위해 깎아주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유용(流用)한 것은 1원 한 푼 없다”고 버텼다. 결국 송사로 번졌다.

검찰은 임 씨의 손을 들어 줬다. 창원지방검찰청 밀양지청은 올해 1월 이 사건을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했다. 밀양지청은 “롯데제과에서 정한 기준가격은 회사의 적정한 이윤 보장을 위해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정해놓은 가격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영업사원은 염가판매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횡령과 배임에 대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물론 롯데제과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영업하는 회사는 모두 목표가 있기 마련이고, 회사가 정한 기준가격을 무시하는 덤핑 판매는 잘못이다. 이 회사 법무팀은 “가게 주인이 과도한 할인을 요구하면 본사의 결재를 받도록 했지만 임 씨는 이를 무시했다”며 “아무리 영업환경이 어렵다고 해도 영업사원은 회사 제품을 회사가 정한 가격대로 팔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최근 절충안을 내놓은 회사도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말부터 각 사업부에 부과하던 영업목표를 없애고 대신 개인이 자율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게 했다. 이광호 삼성생명 홍보팀 차장은 “영업목표를 과도하게 잡으면 판매원들이 ‘무조건 다 보장된다’는 식으로 편법을 동원한다”며 “그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목표를 자율적으로 세우게 했다”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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