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단지 따로 임대단지 따로… 여전히 딴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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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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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지구에 분양 - 임대 함께 지어 ‘계층통합 한동네’ 기대했더니…

서울 성북구에 있는 K아파트 단지에는 전체 20개동 가운데 유독 섬 같은 2개동이 눈에 띈다. 이 단지 정문에서 차를 타고 들어가면 이 2개동에 닿을 수 없다. 그 대신 정문 왼쪽으로 차를 타고 1분 정도를 지나야 별도로 만들어진 임대아파트 정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입주자의 편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18 대 2’의 비밀은 바로 분양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의 차이에 있다. 18개동은 분양 아파트이고 2개동은 임대 아파트다.

이 단지의 ‘분양 주민’과 ‘임대 주민’ 사이에는 물리적 거리보다 더 먼 감정적 거리가 존재한다. 2004년 임대 주민들이 샛길을 만들려고 하자 분양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무산시켰던 과거가 앙금으로 작용했다. 임대 주민인 김모 씨(62)는 “분양동 사람들은 우리를 업신여긴다”며 “우리가 못사는 사람들이란 편견으로 차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분양 아파트에 사는 김모 씨(35·여)는 “저 두 동은 이름만 비슷하지 사실상 다른 동네”라며 “같은 아파트 단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는 보금자리지구에 분양·임대 혼합단지를 만들어 사회계층의 통합을 시도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분양과 임대 아파트 주민 사이의 뿌리 깊은 거리감을 깨뜨리기 위한 ‘사회혼합(소셜 믹스·Social Mix) 정책’이 현실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 것.

계층별로 함께 어울려 사는 ‘아파트 공동체’를 지향했던 보금자리 시범지구 4곳 중 분양·임대 혼합단지를 추진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시범지구 중 서울 강남과 서초지구는 분양단지와 임대단지가 뚜렷하게 갈린다. 강남지구는 분양단지가 4곳, 임대단지가 3곳이고 서초지구는 분양단지 2곳, 임대단지 3곳으로 나뉘어 있다. 더구나 서초지구는 분양단지와 임대단지를 과천∼우면산 고속화도로가 가로질러 격리감이 더하다. 경기 고양 원흥지구와 하남 미사지구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정부는 ‘단지 내 혼합’은 아니지만 ‘지구 내 혼합’은 달성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토해양부의 보금자리주택 업무처리지침에는 4개의 분양·임대 혼합유형이 나와 있다. 같은 단지, 같은 동에 분양과 임대 가구가 함께 들어선 주동혼합형, 같은 단지에 분양동과 임대동이 나뉘어 있는 단지혼합형, 분양단지와 임대단지의 상대적 거리에 따른 단지인접형과 단지분리형이다. 정부는 이 중 단지분리형 혼합을 이뤘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단지분리형 혼합은 진정한 소셜 믹스로 보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당초 정부는 소셜 믹스를 통해 ‘가난한 아파트’라는 낙인효과를 없애는 것은 물론이고 범죄율을 낮추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부담도 줄이는 효과를 기대했다. ‘나홀로’ 영구임대주택단지의 슬럼화로 빚어진 주거지 분리→거주계층 고착화→사회적 불균형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김규정 부동산114 부장은 “2008년 말부터 입주를 시작한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는 분양 단지와 임대 단지가 나뉘어 있다”며 “분양 주민들은 아파트값 상승에 관심이 커 분양과 임대 주민 사이의 자연스러운 커뮤니티 형성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물리적 혼합 자체를 이루기 어려운 이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 LH “현재로선 영구임대-국민임대 혼합 유도” ▼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낭만적으로 생각하면 소셜 믹스로 사회통합이 가능할 것 같지만 실제론 분양 주민뿐만 아니라 임대 주민도 섞여 사는 것을 서로 불편해한다”고 지적했다.

1월에 본청약까지 모두 마친 서울 강남과 서초 보금자리지구는 사전예약 때부터 분양만 한다고 공고를 냈다. 이 때문에 나중에 소셜 믹스를 추구한다며 해당 단지에 임대 가구를 추가할 순 없는 상황이다. LH 관계자는 “분양공고를 낼 때 단지 안에 임대 가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차후에 (임대 가구를) 포함시키면 약속 위반이 된다”고 말했다.

보금자리 시범지구의 단지분리형 구조는 2∼4차 보금자리지구는 물론이고 앞으로 추가 지정될 보금자리지구의 기본 틀이다. 앞으로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 때 분양·임대 혼합단지를 짓는다고 하면 청약예정자들이 형평성을 문제 삼고 나올 수 있다.

다만, 정부와 LH는 보금자리지구의 임대단지 안에는 여러 유형의 임대아파트를 섞어 짓는다는 방침이다. 임대아파트 내 소셜 믹스를 추진하는 셈이다. 임대아파트는 영구임대를 비롯해 30년 이상 임대하는 국민임대, 20년 계약의 장기전세, 10년임대 그리고 분양대금을 일정 기간 나눠 내는 분납임대 등으로 구분된다. 그나마 서울 강남지구는 영구임대와 국민임대, 10년임대와 분납임대, 장기전세를 각기 한 동에 섞어 배치하지만 고양 원흥지구는 동별로 나눠 배치해 일률적이지는 않다.

LH 관계자는 “현재로선 영구임대와 국민임대의 혼합을 유도하는 차원”이라며 “함께 어울려 살게 되는 영구임대와 국민임대 주민들이 실제로 화목한 커뮤니티를 구성할지는 입주 이후에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이건혁 기자 reali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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