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기다려… 정몽구 ‘아버지의 방’에 들어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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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건설 오너로 계동 사옥 ‘王회장 집무실’ 첫 출근

1일 오전 7시. 서울 종로구 원서동 현대 계동사옥 현관 앞에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이 멈췄다. 뒷좌석 문이 열리자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밝은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정 회장은 현대건설 김창희 부회장과 김중겸 사장의 영접을 받으며 “감개무량하다”고 밝힌 뒤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 집무실로 향했다.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이 2001년 타계 직전까지 사용한 그 집무실이었다.

최근 리노베이션이 끝나 이제는 아버지의 흔적을 볼 수 없게 된 집무실에서 정 회장은 임원들로부터 50여 분간 업무 보고를 받은 뒤 월례 조례가 열리는 장소인 지하 2층 대강당으로 향했다.

정 명예회장 타계 이후 약 10년간 보존돼온 현대 계동 사옥 15층 회장 집무실은 이날 이렇게 새 주인을 맞았다. 이날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이 집무실에서의 첫 업무보고와 현대건설 월례 조례 참석을 시작으로 현대건설의 오너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현대 계동사옥 15층 집무실에서 결재서류를 검토하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생전 모습. 현대건설 제공
현대 계동사옥 15층 집무실에서 결재서류를 검토하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생전 모습. 현대건설 제공
재계는 정 회장의 ‘15층 집무실 입성’을 두고 현대가(家)의 적통성을 증명하는 상징적 행동으로 해석한다. 현대 계동사옥과 회장 집무실은 정 명예회장이나 현대그룹에 있어서 단순한 ‘건물’이나 ‘사무실’ 차원의 시설이 아니다. 1983년 5월 준공된 계동사옥을 두고 정 명예회장은 “현대는 이곳에서 세계 경제를 이끌게 될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현대그룹의 고속성장을 이뤄냈다.

임직원들 사이에서 15층은 ‘공포의 장소’로도 유명했다. 친근할 때는 아버지 같지만 호통 칠 때는 호랑이 같던 정 명예회장의 성격 때문에 회장님의 호출을 받으면 임원들은 다리부터 후들후들 떨었다. 마음이 다급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하고 15층까지 비상계단으로 뛰어 올라가 땀에 젖은 채 숨을 몰아쉬며 보고하기도 했다. 일부 혼이 난 임원이 집무실을 나와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해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한 이야기도 유명하다.

정 명예회장 타계 이후 현대건설이 어려워지면서 계동사옥은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 현대모비스 등에 층층으로 나뉘어 매각됐다. 현대차그룹에 매각된 15층 집무실에 얽힌 사연도 함께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10년간 이 집무실을 쓰지 않았다. 범현대그룹 관계자는 “형제들끼리 계열사를 나눠 각자 갈 길을 가면서도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곳을 쓰기는 어렵다’는 공감대가 있었고 ‘현대건설을 되찾지 못한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을 자격이 없다’는 인식 때문에 집무실을 보존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을 인수한 정 회장의 소유가 된 계동사옥과 15층 집무실은 아버지의 손길을 떠나 아들의 공간이 됐다. 범현대가 관계자는 “10년 이상 비워뒀던 15층 집무실을 정 회장이 사용한다는 것은 결국 아버지의 계보를 잇게 됐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현대건설을 다시 찾은 정 회장을 보면서 상당수 현대건설 임원들은 ‘다시 현대그룹이 됐구나’라는 감회에 젖었다. 조례 장소인 지하 2층 대강당으로 이동한 정 회장은 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오늘은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의 일원이 되어 함께 첫발을 내디디는 매우 뜻깊고 역사적인 날”이라며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과 한 가족이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은 건설부문을 자동차, 철강과 더불어 그룹의 ‘3대 핵심 미래 성장 동력’으로 집중 육성할 계획”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건설 역군이라는 자부심과 한국 건설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미래를 향해 함께 도전하자”고 주문했다.

이어 정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현대건설 상무보 이상 임원과 현대차그룹 부사장급 임원 270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부동반 만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도 참석했다.

현대차그룹은 1월 7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14일 양해각서(MOU), 3월 8일 주식매매 본계약(SPA)을 체결했으며 이날 최종 잔금 4조4641억 원을 납입해 현대건설 인수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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