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강윤구 건보심사평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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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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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 중통도 좋지만 소통부터 했지요”

집무실에서 화초를 가꾸고 있는 강윤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그는 여직원들이 부담을 느낄까봐 100개가 넘던 화초 중에서 10개만 남겨 직접 돌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부장급 간부 83명 중 43명이 여성일 정도로 여성 비중이 높다. 강 원장은 여성 직원과의 소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집무실에서 화초를 가꾸고 있는 강윤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그는 여직원들이 부담을 느낄까봐 100개가 넘던 화초 중에서 10개만 남겨 직접 돌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부장급 간부 83명 중 43명이 여성일 정도로 여성 비중이 높다. 강 원장은 여성 직원과의 소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강윤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원장은 여성들에게 포위당한 최고경영자다. 일반 직원 1700명 가운데 여직원이 73%에 이르고, 그 위로 차장 247명의 성비는 91명 대 156명으로 역시 여초(女超)이다 보니 이런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여성 간부’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반 직원 중 여성이 간부로 뽑힐 확률이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벌써 부장급 간부 83명 가운데 43명이 여성이다. 부장보다 한 단계 위인 실장급 26명 중 여성은 12명. 최고 관리자층인 실장급에서만 여성이 근소한 차이로 적은 셈이지만 성비 역전은 시간문제다.

이런 환경에서 강 원장의 생존 방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는 지난해 3월 취임했다. 당시 100개가 넘는 비싼 난초 화분이 축하 선물로 들어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덩치 큰 난초들이 하나둘씩 없어졌다. “난초에 물을 주는 여직원들에게 미움 받기 싫어서 여기저기 분양해버렸다”는 게 그의 해명이다. 취임 1주년을 맞는 요즘, 그의 집무실에는 그가 직접 물을 주는 키 작은 난초 10개만 남아 있다.

○ 친녀(親女)의 이유와 소통의 길

그는 5년 전만 해도 실수를 저지른 남녀 직원에게 호통을 치기도 하고, 저녁에는 폭탄주 10잔을 거뜬히 비우는 ‘호방’한 공무원이었다.

이랬던 그가 ‘친녀’ 성향으로 바뀐 것을 두고 모종의 ‘작전’이라고 해석하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 그는 먼저 심평원의 업무 성격에서 변신의 이유를 찾았다.

“병원과 건강보험공단의 중간에 서서 진료비 심사 업무를 맡고 있는 심평원에서는 고도의 전문성과 섬세한 분석력을 갖춘 인력이 업무를 주도하게 마련입니다. 이런 업무에 적합한 인력은 대부분 여성입니다. 그런 여성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원장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강 원장은 여성 우선주의를 택했다. 심평원 건물 지하에 체력단련 센터를 열고 건강을 위한 ‘도전 S라인’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도 주변 여성들의 조언을 받아들인 결과다. 하지만 강 원장이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전문 인력인 여성들이 자기 업무에만 푹 파묻혀 다른 부서에서 돌아가는 일을 모르고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칸막이에 갇혀 부서 이기주의에 빠진 직원들도 많았다. 그래서는 심평원 전체 조직에서 시너지 효과나 업무 효율이 나올 수 없었다.

이 상황을 타파할 구원 투수는 강 원장밖에 없었다.

“대통, 중통도 좋지만 우선 소통(疏通)부터 하자고 직원들에게 제안했지요. 지금까지 내부 직원과 소통을 위해 155회에 걸쳐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모든 직원과 만났습니다.”

강 원장은 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한편 입사 5년 이하인 젊은 직원들로 구성된 ‘청년 이사회’에 “조직 상하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뛰라”고 당부했다. 심평원 직제에도 없는 청년이사회 회원들은 경영회의에 수시로 참석한 뒤 회의에서 오간 얘기를 일반직원들에게 알리는 등 소통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

○ 소통을 넘어 창의로

소통의 문이 열리자 조직에 활력이 찾아왔다.

“경영지식을 전파하는 뉴스레터가 나오고 심평원을 찾아오는 민원인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습니다. 민원 창구 현장의 목소리도 경영진에 바로 전달됐습니다. 통(通)한다는 것의 의미를 실감했지요.”

조직 상하와 수평에서 보이지 않는 벽이 사라진 요즘 강 원장은 전문 인력을 창의력 넘치는 분야로 이끄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조직 내 소통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습니다. 심평원 본연의 임무는 국민이 의료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의식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구성원들 간에 소통이 잘되면 업무에서도 창의력이 묻어 나오게 됩니다. 그럴 때 국민에게 꼭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됩니다. 요즘 호평을 받고 있는 진료비 확인 신청 서비스가 그런 예지요.”

심평원에는 병원에서 볼 수 없는 각종 통계와 의료 서비스 데이터 등 오프라인 정보가 넘쳐난다. 강 원장은 “창의성이 몸에 밴 인력을 대국민 창구에 배치해 심평원만이 가진 정보가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타고 국민과 전국 병원에 더 친절하고 알기 쉽게 전달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조직에 창의력이 흘러넘치면 그 간접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얘기였다.

○ 갑을관계에서 동반적 협력자로

심평원의 업무를 언뜻 보면 병원이나 약국에서 잘못된 것을 잡아내고 감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심평원은 병원에서 진료비가 많이 청구되면 그걸 깎을 권한을 갖고 있다. 병원에 대해 갑(甲)으로 군림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강 원장은 더는 갑을관계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잘하는 의료계를 응원하고 더 잘하자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 심평원의 심사업무입니다. 병원을 누르기만 하면 의료계의 앞날이 밝지 않습니다. 의료 시스템이 건강하게 클 수 있도록 의료계와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만들고자 합니다.”

“드넓은 우주에서 우주선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자이로스코프’가 되겠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 심평원, 나아가 한국 의료행정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진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 강윤구 원장은


―1950년 전남 영광 출신

―1973년 고려대 철학과 졸업

―1974년 행정고시 16회 합격

―1997년 보건복지부 장애인복지심의관

―1998년 보건복지부 공보관

―1990년 보건복지부 연금보험국장

―2001년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

―2003년 보건복지부 차관

―2007년 순천향대 의료과학대 학장

―2008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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