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김순진 놀부NBG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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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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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 찾는 손님들에 ‘눈맛’도 서비스”

김순진 놀부NBG 회장이 9일 수라온 반포점에서 직접 수집해 전시한 전통공예품을 설명하고 있다. 1987년부터 전국 곳곳을 다니며 모은 공예품은 5500여 점에 이른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김순진 놀부NBG 회장이 9일 수라온 반포점에서 직접 수집해 전시한 전통공예품을 설명하고 있다. 1987년부터 전국 곳곳을 다니며 모은 공예품은 5500여 점에 이른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흡사 작은 박물관 같았다. 9일 놀부NBG의 고급한정식 전문점인 수라온 반포점(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들어서자 연적, 비녀, 은장도, 항아리 등이 은은한 흰색 조명을 받으며 매장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모두 김순진 놀부NBG 회장이 전국을 다니며 직접 모은 것이다. 김 회장은 1987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식당 ‘놀부’를 열던 때부터 전통 공예품을 수집하기 시작해 현재 55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병풍, 뒤주, 돈궤, 굴뚝, 가마, 떡판은 물론이고 노비 문서, 유언장, 과거시험지 등 그야말로 우리 선조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했던 물건 대부분이 망라돼 있다.

○ 삼국시대부터 시대별로 다양

“이것들은 ‘소꿉’이라고, 항아리 그릇 등 평소 사용하던 물건 모양대로 작게 만들어 무덤에 부장품으로 넣었던 거예요. 귀엽죠?”

설명을 부탁하자 김 회장의 얼굴에 화색이 가득했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환한 표정으로 공예품을 대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아기를 대하는 것 같았다. 구불구불한 시골 산길을 마다 않고 다니면서 ‘데려왔다’고 한다.

김 회장의 공예품 수집은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한식당인 만큼 내부를 수숫대, 꽈리, 조롱박 등으로 꾸미다 보니 점점 옛날 물건으로 관심 범위가 넓어졌다. 손때가 까맣게 묻은 낡은 물건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아끼는 부모님의 영향도 컸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늘 그러셨죠. ‘헌 것이 있어야 새 것이 있는겨∼’라고요.”(김 회장의 고향은 충남 논산이다.)

한 점 한 점 모으다 보니 어느새 작은 박물관 수준이 됐다. 그는 “너무 많이 사랑하게 된 결과”라며 웃었다. 제작 시기도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시대별로 다 있다. 수라온을 비롯해 해외 직영점포에는 이들 공예품이 전시돼 있다. 나머지 수집품은 회사 물류센터(경기 광주시)에 보관하고 있다.

“박물관은 못 만들지만 손님들이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전시했어요. 외국인 손님들이 특히 더 좋아해요.”

○ 추억, 그리고 상인정신

김 회장은 물건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도포자락에 숨겨서 몰래 잡아당겨 넣고 뺄 수 있게 만든 과거시험 커닝페이퍼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요. 점잖게 갓 쓰고 도포 입은 양반이 감독관을 피해 커닝하는 장면이 떠오르죠. 사람 사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 마찬가지구나 싶고요.”

돈궤를 보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무로 정교하게 짜여진 모습을 보며 그 시절 상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사업을 했는지 상상해본다.

“선조들이 돈궤에 돈을 채우려고 어떤 창의력을 발휘했을까를 생각하면서 제 경영 방식을 되짚어보고 방법을 연구하게 됩니다.”

그는 뒤주를 보면 ‘사도세자’가 아닌 아버지가 떠오른다고 했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시집 와 딸 셋을 내리 낳자 “대 끊긴다”며 아예 밥을 못 먹게 했다. 출산 후 며칠을 굶은 어머니는 헛소리까지 하기 시작했다. 어쩔 줄 모르던 아버지는 “저놈의 뒤주를 도끼로 부숴버려야지. 사람 못 먹는 쌀 담고 있는 뒤주가 무슨 소용이여”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뒤주를 볼 때마다 아내에 대한 사랑과 어머니에 대한 효 사이에서 괴로워했을 아버지를 그려보게 되지요.”

사람들은 이들 공예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많이 물어본다. 김 회장도 전문가에게 감정을 받은 적이 있다.

“전문가 한 분이 그러더군요. 진위보다는 이들이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것에 의미를 두라고요. 공감했죠. 가격보다는 그 자체로 소중하니까요.”

수집한 공예품 전체 가격도 모르고, 앞으로 매겨볼 생각도 없단다. 그는 재테크 수단으로 이들을 모은 것이 절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래된 물건은 이사를 가거나 조금만 관리를 잘못해도 금방 깨지거나 망가져요. 그러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잖아요. 보관에 드는 비용, 공간, 노력 등을 생각하면 금전적으로는 오히려 손해가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든다니까요. 좋아하니까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모은 거죠.”

○ “더 많은 나라에 한식 알릴 것”

작은 식당에서 시작한 놀부NBG는 매출 1370억 원(2010년 말 현재 본사 기준)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중국, 태국, 싱가포르에 점포를 낸 것을 비롯해 포장 식품을 수출하는 나라까지 합치면 모두 15개국에 진출해 있다. 전체 점포 수는 690개(직영점 17개, 가맹점 667개, 해외점포 6개)에 이른다. 앞으로는 진출 국가를 더 확대할 계획이다.

“우리가 진출한 나라는 중국, 동남아시아에 집중돼 있어요. 이를 미국, 호주, 러시아 등으로 넓혀 나갈 겁니다. 더 많은 나라에서 한국 음식과 문화를 접하고 이를 통해 매력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요.”

김 회장은 한국인들이 베트남 쌀국수를 먹으려 줄을 서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듯이 외국인이 잡채와 불고기를 먹으려고 줄을 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한국 음식과 문화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겁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거든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김순진 회장은

― 1952년 출생

― 1987년 놀부 창업

― 1989년 프랜차이즈점 1호점인 ‘놀부보쌈’(상도점) 개점해 프랜차이즈 사업 시작

― 1990년 ㈜농원식품 설립

― 1993년 회사 이름 ‘놀부’로 변경

― 2008년 회사 이름 ‘놀부NBG’로 변경

― 2001년 우송대 관광경영학과 졸업

― 2003년 경원대 관광경영학과 석사

― 2006년 경원대 관광경영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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