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재계 3세 ‘소통’ 막는 측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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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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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산업부 기자
김현지 산업부 기자
‘재계 차세대 리더’ 시리즈(본보 15∼18일, 21일자) 취재를 시작하면서 한 대기업 부장에게 오너 일가에 관한 정보를 요청했다. 그랬더니 그는 “(오너와) 가까워지면 타 죽고 멀어지면 얼어 죽는다”며 손사래를 쳤다. 너무 많이 알면 ‘다치고’, 너무 멀어지면 잊혀져 승진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는 “(직장인이라면) 오너 일가에 대해선 묻지도, 알려 하지도 말아야 하는 게 도리”라고 덧붙였다.

정말 그럴까. 기자가 직접 접촉해 본 오너 일가, 특히 젊은 3, 4세들은 사뭇 달랐다. 외부와의 소통에 열려 있었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딸 현민 씨(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 상무보)가 한 예다. 기자는 조 상무보와 인터뷰하기 위해 대한항공 홍보실을 먼저 접촉했다. ‘공식 루트’부터 밟은 것이다. 하지만 홍보실은 “조 상무보에게 e메일로 보고했는데 답이 없다”며 “곤란할 듯하다”고 했다.

하지만 직접 조 상무보에게 접촉해 보니 흔쾌히 e메일 인터뷰가 성사됐다. 그런데 그는 기자가 인터뷰 요청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홍보실에서 차단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외부와 소통이 단절되는 국내 대기업 오너 일가가 적지 않다.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대한전선, 동양그룹, 대림그룹 등 많은 기업에 차세대 리더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대부분 감감무소식이었다. 본인에게 제대로 전달이나 했을까 궁금해진다.

일부 오너는 성가신 언론의 취재를 홍보실이 ‘알아서 잘라주는 것’을 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열린 인터넷 공간에서 만난 재계 3세들은 아주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오너들은 소통하고 싶은데, 부하 직원들이 막는 것은 오너에게 결코 도움이 안 된다.

또 이런 소통 부재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잠재적 경영 후계자가 최고경영자(CEO)의 자질을 갖췄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장점은 살리되 단점을 보완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조차 “경영권 승계는 회장님만 아시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잠재적 후계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면 그 기업의 경영 승계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오너 일가는 건드리면 안 된다”며 슬쩍 넘어가려는 사람들, CEO의 외부 접촉을 무조건 차단하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과연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를 사랑하고 발전을 희망하는 사람들인지 묻게 된다.

김현지 산업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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