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물가잡기’ 드라이브]정부 생필품 가격 단속에 “물가잡기, 기업만 동네북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원자재값 상승 어쩌라고”… 정유-식품업계 볼멘소리

“이러니까 한국에서 장사 못해먹겠단 말이 나오는 거다.”(정유업계 관계자)

“일부 품목은 팔수록 손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보다 지금이 더 위기다.”(식품업계 관계자)

‘3% 물가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정부의 전방위 ‘물가 단속’이 계속되면서 기업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들은 “민생안정이라는 정부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대통령 말 한마디에 정부가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원자재 가격 상승과 정부의 가격 단속이라는 이중 압박을 받고 있는 식품과 정유업계의 볼멘소리가 크다.

10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설을 앞둔 지난달 국내 식품업체 및 유통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설까지는 가격 인상을 하지 않겠다’는 구두 동의를 받아냈다. 지난달 3일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 경제운용 목표로 ‘5%대 경제성장과 3% 안팎의 물가안정’을 제시한 직후였다.

당시엔 이미 콩(56.95%), 밀(83.72%), 옥수수(94.70), 커피(94.48%), 원당(16.36%) 등 국제 식품원자재 가격이 지난해 대비 최대 95%까지 오른 상태였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식품업체들이 가격을 인상했거나 할 예정이었지만 정부의 강력한 요구에 원가 반영을 중단했다. 풀무원식품, CJ제일제당, 동서식품 등은 올렸던 두부와 커피 값을 일주일도 못 돼 내리는 해프닝까지 빚었다.

▼ 정부 일각 “무리한 물가단속 시장왜곡 우려” ▼

산업계 일각에서는 ‘설이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었지만 이는 보기 좋게 무너졌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 유통업체 수수료를 공개하고, 정유·통신업계도 다 뒤집어 봐야 한다는 말이 연일 나오는데 가격 인상 얘기를 어떻게 꺼내느냐”며 “(청와대에) 찍히는 게 두려워 다들 눈치만 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불만은 정유업계도 마찬가지다. 구자영 SK이노베이션 사장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물가 안정 차원에서 유가를 내리려고 하는 방침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뇌부의 공식 입장일 뿐 실무자들의 얘기는 다르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기름값을 보면 53%가 세금, 39%가 원유가이고 8%가 국내비용으로 150원에 불과하다”며 “국제유가가 나날이 뛰는 상황에서 150원의 10%를 줄여봤자 15원인데 이걸 가지고 목을 조르니 (에쓰오일, GS칼텍스 같은) 외국계 정유사들이 ‘한국에서 장사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물가 안정 기조 때문에 속병을 앓는 건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전력은 당초 올해 원가 이하의 전기료를 원가 수준으로 올리는 ‘전기요금 현실화’를 강력히 추진할 생각이었지만 청와대의 물가 집착이 시작되면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분위기가 이러하자 정부 내에서조차 ‘정부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물가 단속을 총괄 지휘하는 기획재정부와 산업계 실무업무를 담당하는 지식경제부 사이에서는 압박의 강도를 두고 부처 갈등 조짐마저 보이는 상황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사실 기업들의 항변도 일리가 있지만 청와대에서 자꾸 말이 나오니 어쩔 수 없다”며 “압박을 통해 한시적으로 기름값 등이 내려갈 순 있겠지만 정부의 시장 왜곡으로 보일 수 있어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임우선기자 imsun@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