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올 설연휴 ‘종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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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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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첫날인 2일 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데 8시간이 걸렸다. 시동생 부부와 운전을 해서 부산을 간 회사원 김모 씨(36·여)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갔다.

차 안은 대체로 조용했다. 4명이 각자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거나 음악을 들었기 때문이다. 근 한 달 만에 만나 반가울 법도 한데 초반 30분 정도 대화를 한 이후에는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남편이 이따금씩 스마트폰을 통해 교통 상황을 중계했을 뿐이다.

‘애플’과 ‘블랙베리’가 그저 과일이었을 때 세상은 훨씬 단순하고 살기 편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번 설 연휴에는 이 농담을 실감한 가족이 많았다. 아이들이 서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겠다고 싸우는가 하면, 어른들도 서로 각자의 스마트기기만 들여다보느라 대화가 줄었다.

반대로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화제의 중심이 되면서 정보기술(IT) 기기가 대화의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스마트폰에 이어 아이패드와 갤럭시탭 등 태블릿PC가 빠르게 보급된 이후 처음 맞는 명절의 풍경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 세상과 통하며 가족끼리는 썰렁


3일 설날 아침, 서울 큰형님 댁에서 차례를 지낸 이모 씨(65)는 집안 분위기가 전과는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지난 설에는 세뱃돈을 받고 신난 조카 손녀 손자가 노래도 부르고 재롱을 부렸다. 집안 어른들과 이제 성인이 된 조카들도 어린 아이들과 장난치느라 늘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올해는 아이들이 세뱃돈을 받고 잠시 좋아하더니 이내 작은 화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엄마, 아빠들의 스마트폰이었다.

오후에는 집안 식구 모두가 근처 고깃집으로 향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어른들이 조금씩 취해 목소리를 높이며 웃자 여섯 살 아이가 소리쳤다. “아이 씨, 안 들려!” 스마트폰의 게임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며 투정을 부렸다. 잠시 후 여섯 살 오빠와 세 살 여동생이 서로 먼저 스마트폰을 보겠다고 싸우기 시작했다.

차례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도 서로의 스마트기기를 보느라 대화가 줄어들었다. 맞벌이를 하는 조모 씨(38)는 “본가와 처가에 들러 집에 와서 TV를 보는데 조금 지나니 TV는 켜진 채로 어른들은 각자의 스마트폰을, 딸은 내 태블릿PC를 들여다보고 있더라”라며 “사람은 3명인데 켜진 화면은 4개였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는 올해 설 연휴에는 지난해보다 데이터 통신량이 300% 증가했다고 6일 밝혔다. 만나지 못하는 가족들이 화상통화를 한 경우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가족들을 앞에 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거나 인터넷을 한 결과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학교나 직장에서는 스마트기기 이용이 쉽지 않지만 아무래도 가족들끼리 있으면 더 편하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빠져들기 쉽다”고 지적했다.

○ 대화의 물꼬 트는 역할도


반대로 스마트폰이 오랜만에 만난 가족 간의 화합에 도움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고향이 충남 아산인 회사원 전모 씨(35)는 아이폰에 무전기 같은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헤이텔(Heytell)’을 내려받아 다른 차로 내려가는 누나, 조카들과 교통 정보를 교환하며 가다 보니 길이 막히는지도 잘 몰랐다고 전했다. 전 씨는 “조카들에게 태블릿PC로 동화도 읽어주고 게임도 함께해 인기를 독차지했다”고 말했다.

회사원 홍성찬 씨(41)는 명절 때마다 앨범을 들고 가거나 새 사진을 뽑아 가서 충북 제천에 계신 부모님께 보여드리곤 했다. 하지만 이번 설 연휴에는 아이패드 하나로 추석 이후 찍은 모든 가족 사진을 보여드릴 수 있었다. 이후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사진만 뽑아 드렸다고 한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관심사를 공유하기가 쉽지 않다”며 “스마트기기가 대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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