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새해 투자규모 대폭 확대]삼성그룹 올해 43조 사상 최대 투자-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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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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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LCD ‘超격차 전략’… 뜨는 OLED는 ‘차세대 먹을거리’

《 삼성그룹의 올해 사상최대 투자는 ‘신사업 육성’과 ‘초격차(超隔差) 전략’의 두 가지로 초점이 모아진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앞서 3일 신년 하례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사업과 제품은 10년 안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업과 제품이 자리 잡아야 한다”며 대대적인 혁신을 예고했다. 또 “앞으로의 10년이 100년으로 나아가는 도전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먹을거리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대규모 투자에 나선 배경으로 분석된다. 또 현재 세계 1위인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부문에서는 2등과의 격차를 벌려 압도적인 1위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새로운 사업 발굴에 나서되 기존의 입지를 탄탄히 다지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
○ 안 좋을 때 더 많이

5일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2011년 해외 10대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경제위기 이후 빠른 회복세를 보이던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이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올해는 둔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그리스와 아일랜드 재정위기에 이어 올해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같은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미국도 지난해 1∼11월 대중 무역적자가 1308억 달러(약 147조 원)로 집계돼 2009년 수준(1084억 달러)을 넘어서는 등 사정이 여의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그룹 주력사인 삼성전자의 미국 및 유럽시장 비중은 50.3%(2009년 매출 기준)로 절반이 넘는다. 이처럼 아직은 불안한 올해 세계시장 전망을 감안할 때 삼성의 이번 투자결정은 매우 공격적인 것이다. 43조 원은 2009년 그룹 전체 매출액 220조 원의 5분의 1에 이르는 규모로 올해 서울시 예산(20조5000억 원)의 2배가 넘는다.

삼성은 국내와 해외 투자액 비중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재계에선 29조9000억 원의 시설투자액 가운데 10조3000억 원으로 34%를 차지하는 반도체 부문의 투자가 대부분 국내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체 시설투자의 절반 이상이 국내에서 집행될 것으로 추정한다.

○ 신수종 사업 속도감 있게

이번 투자계획에선 지난해 1조4000억 원에 그쳤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투자액이 4조 원이나 늘어난 5조4000억 원으로 급증해 눈길을 끈다. 삼성은 OLED의 시장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내년까지로 잡혀있던 투자계획을 앞당겨 새로 들어설 5.5세대 생산라인의 양산 규모를 크게 늘리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이르면 내년 초까지 월 10만 장(원판 기준)의 양산능력을 갖춰 당초 계획(월 7만 장)보다 40% 이상 늘리기로 했다.

이는 디스플레이로 OLED를 채택한 갤럭시S가 최근 1000만 대가 넘게 팔리는 등 큰 인기를 끌면서 한때 대만의 HTC 등 외국 거래처를 놓칠 정도로 공급 부족에 시달린 데 따른 것이다. 또 OLED는 동영상 반응속도가 기존 LCD보다 1000배나 빨라 3차원(3D) TV에 적합하기 때문에 삼성이 LCD를 대체할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의 OLED 세계시장 점유율은 98%에 달한다.

삼성 안팎에선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와 더불어 5대 신수종 사업인 발광다이오드(LED)에 7000억 원이 배정되는 등 삼성이 본격적인 미래 성장산업 육성에 나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삼성이 구체적으로 항목을 공개하지 않은 7조3000억 원의 나머지 시설투자액과 12조1000억 원의 연구개발 투자액에도 바이오제약이나 의료기기, 태양전지, 자동차전지 등 5대 신수종 사업 투자액이 포함된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 반도체·LCD ‘초격차’ 전략으로

“현재 1등을 하고 있는 분야에서 2등이 감히 넘볼 수 없도록 ‘초(超)격차’를 벌리려는 전략이다.”

이번에 삼성이 밝힌 분야별 투자계획 가운데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반도체(10조3000억 원)와 액정표시장치(LCD·5조4000억 원) 부문의 액수가 압도적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투자액은 지난해(12조 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이며, LCD는 역대 가장 많은 투자액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삼성을 먹여살리는 주력산업인 반도체와 LCD에 대한 투자의 고삐를 올해도 늦추지 않아 독점적 시장지배력을 확보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지난해 주력제품인 반도체 D램 값이 폭락하는 상황에서도 지난해 7월 세계 최초로 30나노급 DDR3 D램 양산에 들어가는 등 지속적으로 미세공정을 업그레이드해 3분기(7∼9월) 반도체 시장점유율을 사상 최대인 40.7%까지 높였다. 2위인 하이닉스반도체의 2배에 가까운 수치다. 이른바 ‘치킨게임’으로 불리는 가격경쟁을 통해 한계기업을 도태시키고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려는 전략인 것. LCD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최근 가격하락세에도 삼성은 매출액 기준으로 지난해 연간 25.8%(추정치)의 세계시장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최근 사회와의 소통을 부쩍 강조하는 삼성이 지난해보다 11% 증가한 2만5000명의 사상 최대 채용을 결정한 것도 의미가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 곽수근 교수는 “삼성이 선도적으로 투자와 고용을 늘림에 따라 나머지 대기업들도 투자와 채용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미래를 준비하라” 이건희 드라이브… 조직-투자 채찍질 ▼

5일 발표된 삼성그룹의 사상 최대 투자계획은 2010년 한 해 동안 진행된 ‘이건희식 공격경영 방침’의 정점을 찍는 것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009년 12월 31일 특별 사면된 뒤 지난해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 행사장으로 날아갔다. 이 자리에서 그는 사면 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나와 “사회 모든 분야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그래야 변화무쌍한 21세기를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위기의식은 3월 24일 삼성전자 회장으로 삼성그룹 경영에 복귀하면서 계속됐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그룹 공식 트위터를 통해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사라질 것”이라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다시 시작하자”고 말했다. 이는 5월 11일 2020년까지 신사업에 23조30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미래의 청사진으로 이어졌다.

이 회장의 상반기 경영활동이 ‘현실 인식’과 ‘미래 비전 제시’였다면 하반기의 주요 활동은 이런 비전을 수행하기 위한 조직의 체질 개선으로 요약된다. 그는 하반기 기자들과 만날 때마다 “어느 시대건 조직은 젊어져야 한다”거나 “21세기는 세상이 빨리 바뀌기 때문에 리더는 젊어야 한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에서는 사장단의 평균연령이 2.4세 낮아지고 임원 인사에서도 젊은 인재를 대거 등용했다. 재계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친 파격적인 인사였다. 한편 이 회장은 9일 69세 생일을 맞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미래전략실 임원과 삼성 계열사 사장단을 초청해 기념 만찬을 하기로 했다. 이 회장이 생일날 그룹 사장단과 기념 만찬을 하는 것은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기 전인 2007년 1월 이후 4년 만이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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