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기술유출 심각… “3년간 4조2000억 피해”

  • Array
  • 입력 2010년 12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 중기청, 1500곳 실태 조사

#1 경기 양주시에서 산업용 보일러 제조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황모 대표(48·여)는 지난해 2월 청천벽력 같은 일을 겪었다. 회사 기술이사와 영업이사, 설계담당 직원 등이 보일러 냉각시스템 기술을 빼돌리고 설계도면 등 컴퓨터에 남아 있던 자료를 모조리 삭제한 뒤 퇴사해 버린 것.

퇴사한 직원들은 같은 해 4월 회사를 차리고 황 대표의 거래처마저 빼앗았다. 피해액은 약 500억 원. 2002년부터 5년 동안 매달려 폐자재를 이용하는 보일러 개발에 성공했지만 하루아침에 폐업을 고려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황 대표는 “보일러 개발로 2008년 약 8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지난해 초에는 ‘이제 사업이 꽃을 피우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고 말했다. 유출 관련자들은 현재 불구속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

#2 경기 화성시에서 반도체 제조 장비 업체를 운영하는 서모 대표(52)도 직원들이 회사 기술을 빼돌려 피해를 보았다. 이 회사는 50억 원을 투자해 2007년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불순물 유입을 막아주는 진공밸브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삼성전자 등 대기업에 납품을 시작했고 해외 진출에도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회사 기술영업부장으로 일하던 A 씨(42) 등 직원 5명이 2008년 6월부터 차례로 퇴사하며 기술을 빼간 뒤 다른 회사에 취직하면서 서 대표의 꿈도 날아갔다. 그는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졌다”며 “대기업에 비해 취약한 중소기업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제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 기술 유출자들 역시 지난달 경기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불구속 입건됐지만 회사가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은 막막하다.

○ 중소기업 보안 ‘비상’

정부가 ‘상생’을 외치며 중소기업 보호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지만 기술 유출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청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지난해 8월부터 9월까지 1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산업기밀 관리 실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 기업의 14.7%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기술 유출로 피해를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청에 따르면 기술 유출 건당 피해액은 평균 10억2000만 원. 3년 동안 중소기업의 피해액 추정치는 약 4조2000억 원에 달했다.

중소기업이 기술 유출에 취약한 이유는 예산 부족 등으로 보안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 했기 때문이다. 내부 직원이 마음만 먹으면 컴퓨터 등에 담긴 정보를 휴대용 저장장치(USB) 등을 이용해 손쉽게 빼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중기청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83.7%는 내부 직원이 기술을 빼돌릴 경우 ‘막기 어렵다’고 답했다. 하지만 중소기업 가운데 2008년 한 해 동안 산업기밀 보호를 위해 보안 비용을 지출한다는 기업은 전체의 59.4%에 그쳤다. 이들의 보안을 위해 들이는 비용도 평균 1951만 원에 불과했다. 보안 비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중소기업은 20곳 가운데 1곳 수준(4.8%)이었다.

○ 정보 보안 적극 지원해야

보안전문가들은 사후 적발도 중요하지만 기술 유출을 사전에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청이 7월 중기청과 업무협약을 맺고 5개 지방경찰청의 외사수사대에 전담팀까지 꾸리며 기술 유출 사범을 적발하고 있지만 사전 예방은 아직 크게 부족한 게 현실이다.

중기청은 기술 유출 사전 예방 사업의 일환으로 내년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종합관제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지만 예산이 17억 원에 불과해 혜택을 받는 중소기업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사업들도 주로 예방교육 등으로 간접적인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술 유출은 중소기업의 연구개발 의지를 꺾는 문제로 최근에는 중국 등 외국으로 기술을 빼가는 경우도 늘어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실질적 손해배상과 더불어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한편 보안시스템 도입을 정부가 지원하는 등 기술 유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