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SNS ‘인맥 거품’을 빼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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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바 숫자(Dunbar's Number)’라는 게 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류학자인 로버트 던바 교수가 만들어낸 숫자인데, 사람의 뇌가 ‘가까운 인맥’으로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약 150명 수준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죠. 이 수준을 넘어서면 그 사람의 직업, 회사, 관심사 등 파편적인 분류를 제외하고는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맬컴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 ‘티핑포인트’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진 이론이죠.

그런데 요즘 우리가 관리하는 인맥은 던바 숫자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페이스북과 싸이월드, 트위터가 보편화된 요즘 우리의 ‘인맥’은 수백 명의 페이스북 친구와 그만큼 많은 트위터 친구, ‘사촌보다 가깝다’지만 역시 수백 명에 이르는 싸이월드 ‘일촌’에 이릅니다. 우리는 전혀 가깝지 않은 이들과 일상적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셈이죠. 우리의 두뇌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넓은 인맥이 아닐까요?

그래서 최근 미국에서는 ‘패스(Path)’라는 새로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서비스는 ‘진짜 소셜’을 내세웁니다. 정말 소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라는 것이죠. 이를 돕기 위해 패스는 잡다한 기능을 내세우며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걸 자랑하는 다른 SNS와는 달리 이것저것 제한을 두는 게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패스에서는 누구도 50명 이상의 친구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정도가 믿을 만한 인맥의 한계라는 생각에서죠. 패스의 최고경영자(CEO)인 데이브 모린 씨는 “서비스가 성장하면 친구 수를 다소 늘릴 수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던바 숫자인 150명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친구 수가 제한될 경우 자연스레 프라이버시 문제도 줄어들고 좀 더 친밀한 대화도 가능해집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온라인 인맥이 드디어 정상적으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인맥이 되는 셈이죠.

또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패스는 서비스의 기능을 오히려 축소했습니다. 패스에서는 동영상도 올릴 수 없고, 음성 녹음도 할 수 없습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는 다 되는 일인데 일부러 이 기능을 뺀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글조차 쓸 수 없습니다. 오직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저와 정말 가까운 50명의 사람이라면 제가 아기 사진을 찍어 올릴 때 이들은 그 아기가 제 아기라 생각하고, 아기의 커가는 모습을 함께 즐거워해 줄 겁니다. 서로가 행복을 나누는 데 긴 말은 필요하지 않은 법이죠.

그동안 우리는 늘 뭔가 부족하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그래서 집은 더 넓어야 하고, 차는 더 커야 하며, 음식은 더 많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물질적 요구가 어느 정도 해결된 사회에서는 뭔가를 더 많이 하는 것보다는 덜 하면서 더 깊이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패스처럼 새로운 걸 만들어 내기보다 기존의 것에서 뭔가를 덜어내고 덜 하게 만드는 기술이 반갑습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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