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계기준 추가 변경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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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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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업계 “우리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게 일”

25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STX남산타워 3층 대회의실에 김지홍 한국회계학회 회장과 한장섭 한국조선협회 부회장, 안영균 삼일회계법인 부대표 등이 나타났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STX조선해양 등 조선사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회계기준원 등에서도 담당자들이 왔다. 60여 명이 참석한 이날 모임의 이름은 ‘조선업 파생상품 회계처리 관련 국제회계기준(IFRS) 대응 심포지엄’. 이들은 이날 “국제회계기준을 한국 기업에 불리하지 않도록 추가로 더 바꾸자”고 결의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국제회계기준 수정이 이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회계 변방국에서 국제무대로

가뜩이나 기업 회계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받는 ‘회계 변방국’ 한국에서 국제기준을 바꾸겠다고 나서는 것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황당한 얘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25일 모임의 참석자들은 이미 국제회계기준을 한 번 바꿔 본 경험이 있다.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다음 달 국제회계기준 중 헤지(위험회피) 회계에 대한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상장법인 등 약 1900개 회사는 내년부터 모두 국제회계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IASB가 발표한 국제회계기준 잠정안을 한국 기업들에 그대로 적용했더라면 세계 최강 한국 조선사들이 상장 폐지되는 악몽 같은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IASB가 위험회피 회계처리의 복잡성을 줄이겠다며 도입한 새 방식이 계약일로부터 대금을 받을 때까지 몇 년이 걸리고 달러로 대금을 받는 한국 조선업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박도급 계약으로 받아야 할 돈의 가치가 변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환헤지 파생상품의 가치가 변하는 것만 반영하는 잠정안에 따르면 한국 조선사들은 환율이 변할 때마다 자본과 자산 가치가 출렁이는 ‘위험한 기업’이 된다.

이를 알게 된 조선업계는 올해 초 한국회계기준원을 찾아가 “한국에서의 회계처리는 국내 사정에 맞게 바꿔서 적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안 된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그러자 조선업계는 “그러면 아예 국제기준을 바꿔버리겠다”고 나섰다.

○“두려움 없다” 글로벌 자신감

이들은 불가능해 보였던 작업에 착수했다. 한 조선업체 임원은 “한국 조선회사의 임원급들은 모두 ‘무(無)’에서 시작해 세계 1위 기업을 만들었다는 ‘글로벌 자신감’이 가득하다”며 “이번에도 두려울 게 없었다”고 말했다.

국제회계기준 잠정안의 오류를 지적하는 서한을 보내고 영국을 찾아가 이사회 미팅에 참여해 설득하는 등의 노력을 펼친 끝에 올해 7월 태스크포스(TF)팀은 IASB로부터 “수정안을 내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이로써 ‘급한 불’에 해당하는 자본 변동 문제가 사라지면서 회계상 자본잠식 기업이 될 우려는 없어졌다.

이는 국내 기업의 경영 환경을 국제회계기준 개정에 반영한 첫 사례다. 회계학계에서는 “건설업 등 유사한 파생상품 거래를 하는 모든 국내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국제회계기준 개정 가능성에 대한 새 지평을 연 셈”이라고 평가했다.

25일 심포지엄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산 변동 문제 등도 개선하기 위해 IASB에 추가로 제안한 자산과 부채의 차감표시(LP)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한장섭 조선협회 부회장은 “그동안에는 우리 쪽의 어려움만 얘기한 측면이 있었는데 금융권이나 투자자 관점에서 LP방식을 도입해야 하는 논리를 개발해 IASB에 제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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