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노믹스’ 물경영 시대]<3>이스라엘의 워터시큐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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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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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없으면 만들어라… 해수 담수화로 30% 충당
버린 물도 다시보자… 오폐수 재활용률 75%

바닷가 ‘물공장’ 이스라엘 서쪽 지중해변에 있는 물 기업 GES의 해수 담수화 설비. 이스라엘은 해수 담수화를 통해 2013년 생활용수의 30%를 바닷물로 만든 물로 대체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제공 GES
바닷가 ‘물공장’ 이스라엘 서쪽 지중해변에 있는 물 기업 GES의 해수 담수화 설비. 이스라엘은 해수 담수화를 통해 2013년 생활용수의 30%를 바닷물로 만든 물로 대체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제공 GES
‘국토의 3분의 2가 건조지역이고 연평균 강수량(435mm)은 세계 평균(880mm)의 절반인 나라, 연간 사용할 수자원의 40%를 공급받는 갈릴리 호수의 물을 주변국인 요르단, 팔레스타인과 공유하는 국가.’

남한 면적의 4분의 1 정도인 이스라엘은 물 부족, 주변국과의 분쟁 위험 등에 상시적으로 노출된 국가다. 게다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최근 5년째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약점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물 안보(Water Security) 국가로 도약하고 있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부설 지역경쟁력센터와 글로벌 컨설팅사인 모니터그룹이 최근 실시한 세계 20개 물경쟁력 선도국가(W20)의 물경쟁력 평가에서 이스라엘은 이런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종합순위에서 한국(14위)보다 2단계 높은 12위였다. 물 수급안정성, 국가 간 물 분쟁 정도에 대한 평가는 바닥권이었지만 수자원 공급, 물 사용 효율성, 대체수자원 활용도 등 ‘미래대응력’ 부문은 최상위권으로 평가됐다.

○ 목마른 나라… 물 만든다

이스라엘 서쪽 지중해변 아슈켈론. 비용대비 효율이 높은 역삼투압 방식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담수화 설비가 연간 1억 m³의 물을 만들어낸다. 이스라엘에는 해수 담수화 설비 31개가 가동되고 있으며 속속 설비를 확대하고 있다. 공사 중인 설비를 모두 가동하면 2020년에는 연간 7억5000만 m³의 담수가 생산된다. 2008년 갈릴리 호수에서 공급받은 양의 3배에 이르는 수치다.

이스라엘은 수자원 통합관리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동북부 갈릴리 호수에서 시작해 남부 네게브 사막까지 전국의 물 저장시설을 1964년 완공된 국가수로와 연계해 국가가 통합 관리한다. 취수와 정수시설을 묶어 국가 차원의 통합 관리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 하지만 절대적인 물 부족과 불안정한 외부 여건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스라엘의 선택은 ‘물 생산’이었다. 바닷물을 민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1960년대부터 해수 담수화를 시작해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과 경험을 축적했다. 3년 후에는 바닷물로 만든 물이 이스라엘 생활용수의 30%를 차지하게 된다.

이스라엘 수자원공사인 메코로트의 이도 로솔리오 사장은 5일 텔아비브에서 기자와 만나 “빗물 등을 모아서 사용하는 ‘워터 컬렉션’만으로는 부족하다”며 “해수 담수화를 통한 ‘워터 프로덕션’으로 수자원 확보의 근본 개념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 물 절약과 재사용 일상화

이스라엘의 경제중심지 텔아비브에서 북쪽으로 25km가량 떨어진 텔몬드에 있는 에란 타미르 씨(48)의 집 정원에는 자동화된 ‘세류관개(Drip Irrigation)’ 설비가 설치돼 있다. ‘세류관개’ 시설은 물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땅속에 파이프를 묻어 식물의 뿌리에 직접 필요한 만큼의 물을 공급하는 설비로 이스라엘 기업(네타핌)이 개발했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물의 공급량을 자동 조절하는 세류관개 파이프는 이스라엘 어디에 가든 쉽게 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학교와 언론을 통해 물 절약 교육을 받는 이스라엘인들은 물을 아끼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시 공무원들은 집을 돌며 수도꼭지나 샤워기용 절수기도 무료로 나눠준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생활용수 사용량이 전년 대비 10%가량 줄었다.

이스라엘은 오폐수를 정화해 농업용수 등으로 다시 사용하는 데도 독보적이다. 물 재활용률이 75%가 넘어 조사대상 W20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스페인은 12%대다. 로솔리오 사장은 “몇 년 내에 오폐수 재사용률을 9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 ‘물 기업가 정신’이 물 안보 자산

이스라엘 국민의 강한 ‘벤처정신’ 또한 물 안보 위험을 극복하는 경쟁력의 원천이다. 텔아비브 북쪽 외곽 키아사리아 내 산업단지에 자리 잡은 물 관련 벤처기업 ‘에메프시’. 직원이 12명에 불과한 이 기업은 하수처리 과정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회사의 에이탄 레비 사장은 2년 전만 해도 또 다른 물 관련 기업의 사장이었다.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매각하고 또다시 회사를 설립한 것.

이영선 KOTRA 텔아비브 무역관 센터장은 “이스라엘 경제의 중심은 수만 개의 중소, 벤처기업”이라며 “이들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창업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물 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의 노력도 활발하다. 이스라엘 정부는 2006년 산업통상노동부가 중심이 돼 17개 부처와 관련 기관이 모두 참여해 물 산업 육성을 위한 프로그램(NEWTech·Novel Efficient Water Technologies)을 수립했다. 이듬해에는 물 관리청을 신설했으며, 올해 말까지 각 부처의 물 관리 기능을 통합해 이 기구에서 맡게 된다. 아브라함 테네 ‘물 관리청’ 담수화부문 책임자는 “각 부처에 물 관련 업무가 분산돼 있을 때는 업무 중복으로 인력과 에너지의 낭비가 많았다”며 “물 관리청 출범으로 예산 독립, 장기적인 계획 수립 및 집행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예루살렘=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 “상수도 시스템 방어체계, 테러대비만큼 중요”
시몬 탈 이스라엘 물산업협회장


“2001년 물 공급 중단 위기를 겪고 난 뒤에 물 안보(Water Security) 문제를 재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와 같은 사고가 다시 벌어진다면 이제 한두 시간 내에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2010 서울 국제상수도 심포지엄’ 참석차 지난달 방한한 시몬 탈 이스라엘 물산업협회장(사진)은 동아일보 특별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체계적인 물 안보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스라엘에서는 2001년 상수도 공급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해 150만∼200만 명이 거주하는 10개 지역에 물 공급이 중단됐다. 이스라엘 정부는 당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 시민들의 고통은 가중됐다.

탈 회장은 “당시 감시장비도 충분하지 않았고 정부기관의 책임도 모호했다”며 “사고 이후 물 위기의 예방과 대응 절차에 대한 체계적인 전략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위기방지 단계(Prevention Stage)’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물 공급 중단 위기로 진화하지 않도록 대처한다. 위기가 발생하면 대체 수자원을 보급하고 상수도 공급시스템을 복구하는 체계적인 절차도 마련했다.

탈 회장은 “위기는 테러 공격이나 전쟁 때문에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라며 “지진과 같은 재난으로 발생하는 국가 상수도 시스템의 마비도 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탈 회장은 물 안보와 관련해 팔레스타인, 요르단과의 국제적 협력, 대체 수자원 개발 등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탈 회장은 “2025년 식수 정도만 겨우 공급받는 물 부족에 직면해 (이스라엘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될 수 있다”며 “현재와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양의 물을 생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낙동강 3급수 추락… 지난해 해수담수화 시설 착공
■ 미래 대비 부족한 한국

동아일보 지역경쟁력센터와 모니터그룹이 물경쟁력 선도국가(W20)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수자원 미래 대응력은 16위에 머물렀다. 물 공급 시설과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떨어지고 소비효율성도 낮았기 때문이다. 미래 대응력을 키워 ‘물 안보’를 확보하려면 대체수자원을 확보하는 동시에 기존의 물을 더욱 효율적으로 공급하고 사용하는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분석 결과 한국의 상수도관 누수율(계량기 계측 기준)은 23%로 조사 대상 20개국 중 다섯 번째로 높았다. 지방 중소도시 등에 20년 이상 된 노후 상수도관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노후 상수도관은 물 손실과 녹물로 인한 수질 악화의 원인이다.

수자원 미래 대응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은 이스라엘도 과거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방정부가 상하수도 설비에 대한 투자보다 수영장, 교회당 등 눈에 보이는 시설 투자에만 매달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방 공기업에 상수도 공급 업무를 이전하고 수익은 모두 시설 개선에 투자하도록 제도화했다.

미래 물 부족에 대비하고 물 산업 육성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수담수화, 물 재활용 등 대체수자원을 개발하는 지속가능한 수자원 정책도 중요하다.

상수원의 90% 이상을 낙동강에 의존하고 있는 부산을 비롯한 경남지역은 2009년 1월 6개월째 비가 내리지 않자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낙동강 수질은 1급수에서 3급수로 떨어졌다.

가뭄의 악몽을 겪은 부산시는 지난해 국내 최대 규모의 해수 담수화시설 건설에 나섰다. 이 사업에는 해수담수화 플랜트 건설업체인 두산중공업과 정수용 역삼투압 분리막 기술을 보유한 웅진케미칼 등 국내 물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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