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새 명품 먹을거리]<8>충남 예산 가나안농장 ‘청정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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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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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환경이 좋은 고기의 비결”… 항생제 안쓰고 유기농 사료 먹여

돼지를 키우는 곳이라면 우선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냄새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14일 방문한 충남 예산군 덕산면의 ‘가나안 농장’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곳이었다. 이 농장 이연원 대표(47)가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로 돼지들을 관찰하는 것부터가 생소했다.

축사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돼지들이 먹고 자고 노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모니터 속 돼지들은 ‘돼지우리’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넓고 깨끗한 축사에서 마음껏 돌아다니며 놀고 있었다. 약 1만 m²(약 3000평)의 가나안 농장에는 4개의 분원(分園)에 나뉘어 약 4500마리의 돼지가 자라고 있다. 매달 400∼500마리의 돼지를 고기용으로 출하하는 대규모 돼지 사육 농장이다.

○건강한 환경에서 자라는 건강한 돼지

어미돼지를 위한 분만실과 모돈(母豚·어미돼지) 사육장은 돼지 농가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사무실 옆 모돈 축사는 널찍하게 트여 있었다. 일반 돼지 사육장보다 마리당 차지하는 공간이 1.5배가량 넓다. 큼지막한 창문에 지붕이 슬라이드 개폐 장치로 돼 있어 맑은 날이면 햇볕이 따사롭게 비춘다. 이 대표는 “식물이건 동물이건 햇볕을 많이 쪼여주어야 건강하다”고 강조했다.

이연원 대표가 운영하는 가나안 농장은 항생제를 쓰지 않고 유기농 사료만 먹여 돼지를
키우고 있다. 이 대표는 “건강한 환경에서 자라는 돼지가 좋은 고기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예산=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이연원 대표가 운영하는 가나안 농장은 항생제를 쓰지 않고 유기농 사료만 먹여 돼지를 키우고 있다. 이 대표는 “건강한 환경에서 자라는 돼지가 좋은 고기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예산=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돼지 귀에 붙은 노란색 ‘인식표’가 눈에 띄었다. 400여 마리 어미돼지 각각을 구분해주는 전자태그(RFID)다. 이 칩에는 돼지가 하루에 먹어야 할 사료 양 등의 정보가 입력돼 있다. 배가 고파진 돼지가 사료통 근처로 가면 전자태그를 인식한 제어 장치가 사료통을 막은 문을 열고 일정량의 사료를 자동으로 투여한다. 만약 인식표에서 ‘그날 먹을 사료를 다 먹은 돼지’라는 정보가 파악되면 사료통 문은 열리지 않는다. 서로 먼저 먹이를 차지하려는 돼지들 사이의 다툼을 방지하는 장치다. 이 대표는 “2억 원을 들여 독일에서 도입했다”며 “돼지의 과식을 방지하고 스트레스를 줄여준다”고 설명했다.

○유기농 사료 먹여 항생제 없이 사육

모든 사료가 유기농산물로 만들어진 것은 이 농장의 특징이다. 2006년 국내 돼지 사육장으로는 최초로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서울에서 건설업을 하던 이 대표는 1997년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 돼지 사육 농장을 시작했다. 돼지고기의 일본 수출이 유망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잘나가던’ 사업은 2000년 구제역 파동으로 엉망이 됐다. 수출이 막히자 판로가 막막했다. 돼지 값이 폭락해 1마리를 팔면 몇만 원씩 손해를 봤다.

살길을 찾아 유기농 축산으로 눈을 돌렸다. 항생제를 쓰지 않고 유기농 사료로만 돼지를 키운다는 구상이었다. 참살이 바람이 불어오던 시기여서 전망은 밝아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항생제를 쓰지 않자 면역력이 약해져 폐사하는 돼지가 늘었다. 이 대표는 “실패를 거듭한 끝에 개량종 돼지를 재래종으로 ‘퇴화’시키는 방법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랜 옛날처럼 넓은 공간에서 햇볕을 쪼여가며 자연스럽게 키우는 방식이다. 어미돼지의 혈청으로 새끼돼지의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도 개발했다. 2006년 ‘맛이 고소하고 육질이 쫄깃쫄깃한’ 유기농 돼지가 탄생했다. 가나안 농장은 ‘불포화지방산을 높이는 돼지 사육법’과 ‘혈청 투입 돼지 사육법’의 2가지 특허를 가지고 있다.

○‘1촌 1명품’ 프로그램으로 재기

각고 끝에 명품 돼지를 만들었지만 판로가 문제였다. 유기농 돼지는 사료 값도 비싸지만 출하까지의 기간도 7개월로 보통 돼지보다 한 달가량 더 길다. 원가가 비싸 가격 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지만 ‘품질’을 알아주는 소비자는 별로 없었다.

‘1촌 1명품’을 만난 것은 이 즈음이었다. CJ그룹이 2006년부터 진행해온 ‘1촌 1명품’은 이재현 회장이 ‘나눔철학’을 강조하면서 시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CJ오쇼핑이 한국벤처농업대학과 함께 선정한 각 고장의 우수 농축산물을 홈쇼핑 방송과 카탈로그에 소개해 매출액 3억 원이 될 때까지 마진 없이 판매하는 제도다. 품질과 기술력은 물론이고 신뢰도와 친환경 농업 기여도 등 심사 조건이 까다롭지만 일단 ‘명품 농축산물’로 선정되면 방송 제작비 등 판매에 들어가는 제반 비용을 CJ그룹이 부담한다. CJ오쇼핑 신윤용 부장은 “좋은 제품을 소개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공헌 모델”이라고 말했다.

이연원 대표는 “처음에는 생산되는 상품의 20%밖에 판매하지 못했지만 방송을 통해 소비자 인식이 바뀌고 판로가 넓어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유기농 돼지’는 현재 유명 백화점 등에서 일반 돼지의 2배 이상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예산=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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