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전용 ‘햇살론’ 출범 1개월…현장에서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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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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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1억 고소득자까지 손 내밀어

서민전용 금융상품 햇살론이 26일로 출범 한 달째를 맞았다. 10% 초반의 낮은 금리로 서민들에게 대출을 내주는 햇살론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출시 당일 39명의 신청자에게 3억1000만 원의 대출이 나간 이후 23일 현재까지 4만5962명에 대해 3982억 원의 대출이 이뤄졌다. 하루 평균 대출액이 190억 원으로 출시 8개월이 지난 미소금융의 전체 대출실적(7월 말 현재 약 150억 원)을 넘어설 정도다. 하지만 햇살론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햇살론 취급 현장에서 나타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서울시내 한 저축은행 지점의 햇살론 담당 직원은 최근 한 대출 희망자가 내민 대출신청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대출희망자는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 계열 증권사의 중간 간부. 게다가 연봉은 1억 원이 넘는 고소득자였다. 하지만 대출신청서를 아무리 샅샅이 살펴봐도 대출을 거절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주식투자 실패를 메우기 위해 제2금융권에서 급전을 빌리면서 신용등급이 7등급으로 떨어진 데다 연체기록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저축은행 직원은 “서민금융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대출을 내주지 않았지만 대출신청자가 대출 조건을 내세우며 거세게 항의하는 통에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햇살론은 신용등급 6등급 이하이거나 연소득 2000만 원 이하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서민과는 거리가 먼 고소득층이 낮은 신용등급을 이유로 햇살론 대출을 받아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 농협 지점 직원은 “보험설계사나 증권사 직원처럼 금융에 밝은 고소득 저신용자들이 햇살론을 많이 찾는다”며 “한 보험사무소에 근무하는 보험설계사 40여 명이 한꺼번에 햇살론 대출을 받아가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햇살론을 취급하는 금융회사들에 고소득자에 대한 대출을 자제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지만 고소득자 분류 기준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창구 직원이 개별적으로 판단해 대출 여부를 결정하다 보니 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과다채무자들에게도 대출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데 대한 우려도 높다.

서울시내 또 다른 저축은행 지점에선 최근 연소득 1500만 원의 저소득자에게 햇살론 대출을 내줬다. 문제는 이 대출신청자가 이미 지고 있는 빚이 8000만 원이 넘는다는 것. 한 달 이자만 60만 원꼴로 월급의 절반을 넘어서는 셈이다. 대출을 갚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이 지점에선 햇살론 긴급생계자금 최고한도인 1000만 원의 대출을 내줬다. 이 저축은행 햇살론 담당직원은 “평소 개인신용대출을 거의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여신심사를 하기 어려워 웬만하면 최고 한도로 대출을 내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햇살론 출시에 따른 제2금융권의 금리인하 효과도 아직 미진한 실정이다. 금융당국은 당초 햇살론이 출시되면 연 30%가 넘는 저축은행과 캐피털사의 신용대출 금리가 낮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햇살론 출범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104개 저축은행 가운데 금리를 인하한 곳은 10곳 안팎. 캐피털사들 역시 신용대출 최고금리를 5%포인트가량 낮췄지만 최고금리를 적용받는 서민들이 적어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제2금융권이 금리인하에 소극적인 것은 햇살론 출시에도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사의 신용대출을 찾는 서민들의 발길이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햇살론 출범 후에도 신용대출은 오히려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햇살론의 생계자금 대출한도가 1000만 원 이하로 낮은 편이어서 제2금융권 신용대출 수요에는 별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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