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편안 뜯어보니 ‘무늬만 친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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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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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가지 서민지원책 혜택 적어 실효성 의문
“고용창출만 강조땐 기업 투자 위축” 우려도

“실제 얼마나 혜택이 돌아오는지 돈으로 환산해 봤다. ‘서민 대책’이라고 이름 붙이기 민망한 수준이다.”(서울 종로구 옥인동 거주 34세 회사원)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세제개편안이 자칫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그렇게 되면 원래 효과(고용 창출)도 거두기 힘들 것이다.”(익명 요청한 경제단체 간부)

기획재정부가 23일 발표한 ‘2010년 세제개편안’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둔 일자리 및 서민 지원책에 대해서도 상당수 기업인과 서민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 알맹이 없는 서민 대책

올해 세제개편안 중 ‘서민 중산층 지원제도’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은 20개가 넘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서민들에게 얼마만큼 혜택이 돌아가는지 꼼꼼히 따져보면 ‘지원’이라고 이름 붙이기 힘들어진다.

다자녀 추가공제가 대표적인 예. 정부는 다자녀 세금공제 혜택을 2배로 늘려 만 20세 이하 자녀가 2명일 때 100만 원, 1명이 증가할 때마다 200만 원씩 추가공제를 해주기로 했다. 이를 총급여 4000만 원인 근로자에게 대입해 보면 자녀가 2명일 때 연간 근로소득세는 7만5000원 줄어든다. 자녀가 3명이어도 16만2000원에 그친다. 이 때문에 “1년에 20만 원이 되지 않는 세제 혜택을 보기 위해 자녀를 1명 더 낳겠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일용근로자의 원천징수세율은 8%에서 6%로 인하되지만 실제 혜택은 미미하다. 예를 들어 일당 15만 원을 받는 일용근로자가 보름간 일하면 줄어드는 세금은 6750원에 불과하다.

8년 이상 경작한 농지를 팔 때 경작기간 계산방법을 수정한 내용, 부가가치세가 사후 환급되는 기자재에 어선용 유류절감장치와 양송이 재배용 복토를 추가한 내용 등도 수혜 대상자가 너무 적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에 대해 재정부 당국자는 “정권이 바뀐 이후 2년에 걸쳐 주요한 세제는 대부분 고쳤기 때문에 이번에는 미세조정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투자 의지 꺾는 기업 세금

재계는 이번 개편안이 고용 창출에 집중한 나머지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반도체나 전자, 통신처럼 취업유발계수(10억 원 투입 시 생기는 취업자 수)가 낮은 업종에서는 “지나치게 불리해졌다”는 원성이 나오고 있다.

전자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첨단 기술로 먹고사는 회사는 연구개발(R&D)에 엄청난 돈을 쓰지만 사람을 많이 뽑기는 쉽지 않다”면서 “몇 명을 채용했느냐에 따라 세금이 달라지는 시스템을 모든 업종에 일괄 적용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고용만 강조하는 세제는 대기업에 큰 부담이 된다. 대기업에 투자 확대를 주문한 정부가 만든 개편안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역시 고용 확대를 통해 세금 혜택을 받기가 만만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건설자재를 납품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이사는 “건설 업계 사정이 바닥인데 직원을 늘리기가 쉽겠느냐. 세금 줄여보겠다고 사람을 더 뽑을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 연장이 불발된 것에 대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 중견기업 대표는 “가뜩이나 경기가 안 풀려서 신규 투자 결정을 내리기가 겁나는 상황”이라면서 “깔린 멍석을 거둬들이기에는 타이밍이 안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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