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은행권 두 맏형에게 맡겨진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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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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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달구고 있는 폭염만큼이나 은행권의 올여름은 뜨겁다. 지난달 초 정치권의 KB금융지주 외압 의혹으로 시작된 은행권의 여름은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취임,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방안 발표, 2분기 시중은행 실적 발표 등으로 숨 돌릴 틈이 없었다. 20일 금융감독원이 단일 금융회사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KB금융지주 제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은행권을 뒤흔들었던 격랑(激浪)은 어느 정도 숨고르기에 들어간 느낌이다.

하지만 최근의 사태 중심에 서있는 KB와 우리금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자산 규모로 보면 두 맏형 격인 KB와 우리금융은 각각 3550억 원, 406억 원 당기순손실이라는 초라한 2분기 성적표를 최근 받아들었다.

가장 실적이 저조한 KB금융은 금감원 제재에서 임직원들이 대거 징계를 받으면서 환부(患部)가 심상치 않음을 드러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려운 KB금융의 경영 관행은 이번 금감원 검사 결과에서 드러난 것 이상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유령 자문역’이다. 외부에서는 물론 은행 내부의 고위 관계자들조차 알지 못할 만큼 철저히 베일에 싸인 외부 자문역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KB금융의 한 전직 임원은 “경영 그룹별로 경영 자문역 및 고문이 상당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몇 명인지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고 확인했다. 이들은 많은 업무를 하지 않은 채 매달 1000만 원이 훨씬 넘는 자문료를 챙겨가면서 정치권과 정부 등을 잇는 중간 고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리딩뱅크로 불리는 금융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우리금융도 예외는 아니다. 민영화 방안에 너무 신경을 쏟은 탓인지 내부 리스크 관리에 허술함을 드러낸 사건사고가 잇따랐다. 우리은행 직원이 3800억 원대의 부동산프로젝트(PF)대출을 지급보증하면서 여신업무 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자문료 명목으로 28억 원을 챙긴 혐의로 경찰이 최근 우리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했다. 이에 앞서 우리금융의 자회사인 경남은행의 직원이 무리하게 부동산 PF대출을 늘리는 과정에서 은행 몰래 문서를 위조해 지급보증을 섰다가 들통 나기도 했다. 우리금융의 순손실은 이러한 부동산 PF대출의 부실로 대손충당금을 대거 쌓으면서 불어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은행권의 두 맏형은 함께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다. 대학에서 총장으로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어윤대 회장이 ‘KB금융호’의 새 선장으로 오르면서 내부 개혁에 시동을 건 상태다. 우리금융도 최근 예금보험공사가 매각 주간사 회사를 선정함에 따라 본격적인 민영화 절차에 접어들었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맞아 해외 선진금융기법 도입에 나섰던 국내 금융회사들이 ‘하드웨어 개혁’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다. 이제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거나 주먹구구식의 후진적인 경영관행과 결별하는 ‘소프트웨어 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다. 두 금융지주사가 과거의 잘못된 경영 관행과 확실하게 선을 긋는 일은 단순히 개별 회사를 넘어 한국 금융시스템의 선진화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정치권과 정부도 그동안 마치 산하 공공기관처럼 은행을 다루었던 그릇된 관치의 유혹에서 벗어나 이들의 새 출발에 최소한 걸림돌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박현진 경제부 차장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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