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 협력사들이 보는 한국 대기업의 ‘어글리 코리안’ 관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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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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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10대 필요”→ 1대씩 사며 값 깎아

“간단히 말해 해외 대기업과는 합리적인 관계고 국내 대기업과는 ‘돼먹지 못한’ 관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미국 IBM, 일본 도시바 등과 국내 대기업 3곳에 동시에 장비를 납품하는 장비 생산업체의 A 대표는 17일 이렇게 말했다. 국내 대기업은 원가절감 압박도 심하지만 그보다 거래 관계 전체가 일방적이고 비합리적인게 문제라고 했다. 한국 대기업과 해외 기업에 동시에 납품하는 협력업체 4곳으로부터 한국 기업과 거래할 때와 해외 기업과 거래할 때의 차이점을 들어봤다.

○낯 뜨거운 ‘어글리 코리안’ 관행

A 대표는 거래하는 국내 대기업들의 거래 관행 중 가장 못마땅한 것으로 ‘구두(口頭)계약’과 ‘단품(單品)계약’을 꼽았다. 필요한 장비 수요를 정확히 말해주지 않고 “한 달 정도 후까지 10대 정도가 필요하다”고 말해서 협력업체가 납기를 맞추기 위해 먼저 생산을 하도록 한 뒤 이를 한 대씩 계약하면서 점점 값을 깎는 수법이다. 협력업체는 미리 만들어놓은 물건을 재고로 쌓아놓기보다는 값을 낮추더라도 납품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A 대표는 “해외 기업도 원가절감을 요구하기는 하지만 미리 처음 10대는 대당 얼마, 그 다음 10대는 그 90% 가격, 그 다음 10대는 85% 가격이라는 식으로 절감 계획을 알려주고 계약도 10대씩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협력업체들은 정보 공유에 있어서도 해외 기업과 국내 대기업의 태도는 천양지차라고 입을 모았다. 해외 기업은 시장전망이나 현재 생산하는 제품이 대체로 시장에서 언제쯤 다음 제품으로 교환될지 등의 자료를 협력업체들과 공유하는 걸 당연히 여기는 반면 상당수 국내 대기업은 이를 철저히 숨긴다는 것이다. 환율 예측이나 시장분석 능력이 떨어지는 협력업체 처지에서는 국내 대기업과 거래할 때 이런 정보 부족이 곧 협상력의 차이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일본 유럽의 글로벌 기업과 국내 대기업에 동시에 납품하는 전자부품업체의 B 대표는 “해외 기업은 공급업체가 망하면 자신들에게도 손해라고 여기는데 국내 대기업은 끊임없이 다른 업체를 끌어들여 협력업체 간에 무한경쟁을 시킨다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납품 바로바로 대금은 어음결제

반면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성과를 자신들이 가져가는 데에 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국내 대기업도 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기술 유출을 우려해 원청업체와 공동 R&D를 하지 않았더니 2차 협력업체를 통해 우리 기술을 빼가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애플의 2차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영업담당 과장 C 씨는 “애플에는 기업비밀인 도면이나 거래처 리스트를 제출할 필요가 없지만 국내 대기업은 그렇지 않았다”며 “애플과 거래하다 국내 대기업과 거래를 해보니 천국에서 지옥으로 온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유지보수나 정비를 당연히 공짜라고 여기는 것도 국내 대기업이 해외 기업과 다른 점이다. 해외 기업을 대상으로 사업을 할 때에는 정비서비스도 하나의 상품으로 팔 수 있지만 국내 기업과 거래할 때에는 이런 기대를 일찍 접어야 한다.

어음 결제도 해외 대기업이 이해 못하는 관행이다. 외국계 기업의 한국지사로 국내 중공업 분야 대기업과 대만 인도네시아의 대기업에 동시에 납품하는 회사의 회계담당 D 대리는 최근 본사의 담당자로부터 ‘모 한국 기업으로부터 대금이 입금되지 않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D 대리는 “전자어음 관행을 설명해 주며 어음 중에는 150일, 180일짜리도 있다고 설명했더니 담당자가 황당해하며 ‘앞으로 그 회사와 거래할 때에는 본사 허락을 받아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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