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시장마저 ‘Made in China’에 휘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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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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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칼슘 부족 현상 왜 일어나나 했더니…

《올 1월 전국에 내린 폭설로 지방자치단체들은 염화칼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지자체마다 미리 보관해 온 제설제의 95%가 한꺼번에 소진되면서 추가로 10만 t 정도의 염화칼슘이 필요했지만 주요 생산지인 중국 역시 폭설로 제설제가 부족해지자 공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조달청은 국내 유일의 염화칼슘 생산 공장인 OCI(옛 동양제철화학) 인천공장을 통해 염화칼슘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이 공장의 최대 생산량은 1만8000t 정도에 불과했다. 중국에 주문하면 15일 정도 걸리던 인도기간도 30일로 두 배로 늘었다.》

국내 업체들이 염화칼슘을 생산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산 염화칼슘은 kg당 370원이지만 중국산 염화칼슘은 230원 정도로 이를 10만 t으로 환산하면 국내산(370억 원)과 중국산(230억 원)의 차이는 140억 원이다.

1968년부터 염화칼슘을 생산했던 OCI는 2004년 주요 설비 가동을 중단하는 대신 중국산 염화칼슘 수입을 병행하고 있다. OCI 관계자는 “국내 업체가 중국산보다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국내 업체 중 새로 염화칼슘 생산에 뛰어드는 업체는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 예산 부족 이유로 외국산 선호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이 조달청을 통해 사들이는 공공 조달 물품 중 외국산의 비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15일 동아일보가 조달청을 통해 입수한 ‘나라장터(국가전자조달시스템) 종합쇼핑몰 내의 외국산 물품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공공기관이 사용한 1088개 품목 중 외국산은 117개로 전체의 18%에 달했다. 금액으론 4288억 원(6.1%)어치다.

외국산 중에서는 중국산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7월 말 현재 염화칼슘처럼 중국산이 없으면 아예 수요를 채울 수 없는 품목이 등사판용 원지, 소형 컴퓨터, 스캐너, 터치패드, 잉크젯프린터, 플로터프린터, 프린터제어기, 디지털캠코더, 요리용 소금, DVD플레이어 등 총 12개다. 2008년 2개에 비해 6배로 늘어난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조달 업체를 선정할 때 예산 절감을 목표로 업체 간 가격 경쟁을 시켜 가격이 싼 업체를 우선적으로 낙찰시켜 왔다. 품질을 살피는 적격성 평가에선 전체 업체의 99%가 통과할 정도로 실효성이 떨어졌다. 비정기적으로 이뤄지는 품질관리단의 점검 물품도 전체의 1%에 그쳤다.

올해 조달청이 12억2100만 원어치를 사들인 에어커튼도 중국산이 전체의 31%를 차지하고 있다. 초중고교 운동장에 깔리는 인조잔디도 지난해 1200억 원 중 160억 원어치가 외국산으로 채워졌다. 최근 초등학교에 깔릴 인조잔디로 최종 낙찰된 중국산 인조잔디의 낙찰가는 2억8246만7200원으로 3억4211만4400원을 써낸 한국산 인조잔디보다 6000만 원가량 저렴했다,

○ 부실물품 납품 제재 갈수록 늘어

하지만 저가 경쟁이 과열되면서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물품의 품질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실제로 올 1월 중국산 염화칼슘은 국내산 염화칼슘에 비해 눈에 닿는 면적이 작아 도로의 눈을 녹이는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찌꺼기도 많이 남아 토양이나 하천으로 유입되면 자동차 부식과 가로수 파괴를 더 많이 일으킬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지난해 학교 식수대에 세우는 기둥에 쓰이는 스테인리스강을 조달청에 납품하는 15개 업체 중 3개 업체가 저가의 중국산을 국산이라고 속여 총 3조5459억 원을 환수당하기도 했다. 중국산 스테인리스강은 국산과 달리 적은 양의 눈과 비에도 쉽게 녹이 슬어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품질 저하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공공조달 시장에서 부실한 물품을 납품해 제재 처분을 받은 업체는 2007년 177건에서 2008년 234건, 2009년 647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지난해 감사원 지적 결과 부적격 업체로 영업 정지 등 행정 처분을 받은 업체도 697개나 됐다. 이들 업체와 진행한 공사는 1740건, 금액으로는 2853억 원에 이른다.

○ 국내 中企 ‘수입업자’ 전락 막아야

미국이나 중국 등 외국에선 공공 조달 시장에서 전략적으로 자국의 중소기업 제품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공공 조달을 중소기업 육성의 주요 정책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예산 절감’만 강조하다 ‘국내 중소기업 육성’을 소홀히 해왔다.

실제로 공공 조달 시장에서의 지원을 바탕으로 기술 개발에 힘써야 할 중소기업들이 그동안 가격 경쟁에 치중하면서 인건비가 싼 외국에 공장을 설립하거나 외국 업체에 하청을 주고 물품을 수입해와 납품하는 사례가 많았다.

지난해 정부가 459억 원어치를 사들인 레이저프린터의 경우 납품한 16개 업체 중 국내에 제조 공장을 가지고 있는 업체는 삼성전자와 신도리코 두 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14개 업체는 중국이나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 등의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납품했다.

업체 간 ‘제 살 깎기’식 경쟁이 가뜩이나 열악한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 여력마저 빼앗는 것도 문제다. 올해 5월 기준으로 2단계 경쟁 평균 낙찰가는 최초 제시한 계약 가격의 76.5%로 2008년 97.5%, 지난해 89.8%에 이어 또다시 낮아졌다. 계약가격의 80% 미만으로 가격을 제안한 경우도 2008년 1.3%에서 지난해 8.8%, 올 5월 17.9%로 급증하고 있다.

조달청도 뒤늦게 이런 문제를 인식해 조달 과정에서 품질과 기술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조달청 행정 발전방안’을 지난달 발표하고 외국산 유통 행태에 대해 올해 말까지 정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beanoil@donga.com



▲동영상=교통법률,제설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도로관리청의 책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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