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中企 상생 못하면 산업생태계 5년안에 파괴”

  • Array
  • 입력 2010년 8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윤용로 기업은행장, 불공정관행 청산 강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相生)하지 못하면 5년 안에 국내 산업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습니다.”

윤용로 기업은행장(사진)은 중소기업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금융인으로 꼽힌다. 요즘 대-중소기업 문제를 둘러싼 날선 공방도 남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애써 자제하려던 윤 행장은 기자의 거듭된 요청에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만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그를 만난 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을지로2가 기업은행 본점 행장 집무실에서였다.

“1960년대 초반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던 무렵 창업한 1세대 중소기업인들이 이제 70세 전후가 됐습니다. 기업을 승계해줄 시점이 된 거죠. 하지만 ‘대기업의 횡포 때문에 못해 먹겠다’는 분이 많습니다. 젊은 기업인은 ‘골치 아파서’ 안 하겠다고 하고요.”

그는 중소기업 천국이라는 일본을 사례로 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우리에게도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 중소기업이 500만 개라고 하죠? 고령화와 대-중소기업의 불공정거래 문제 등으로 1년에 7만 개씩 폐업한다고 합니다. 남 이야기가 아니죠. 백두산 호랑이가 왜 사라졌습니까. 토끼들이 없어지니까 그렇죠. 불공정거래 관행을 과감히 청산할 때가 왔습니다.”

사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 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부가 중소기업 체질 개선을 주요 경제정책으로 추진해 왔다. 중소기업을 위한 각종 세제·금융 지원책만 170여 개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일각에서 ‘이런 세제·금융 혜택이 중소기업에 머물지 못하고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공감하는 바가 큽니다. 각종 중기 지원책의 수혜를 결국 누가 보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세제 및 금융정책을 두루 섭렵한 경제관료 출신이다.

그는 지금의 논의가 ‘대기업 때리기’로 흘러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도 안이한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대기업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영원한 을(乙)’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중소기업들은 매출이 늘어도 연구개발(R&D) 투자비를 좀처럼 늘리지 않습니다. 지금 상태에서 안주하겠다는 겁니다. 기업가정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봐야죠.”

기업은행은 1일 창립 49주년을 맞았다. 내년이면 출범 50주년을 맞는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지주회사로의 전환 작업이다. 윤 행장은 다음 달 중 퇴직연금전문 IBK연금보험이 영업을 개시하면 정부와 국회의 협조를 얻어 지주회사 전환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