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지혜]외부 충격과 난제, 自得의 정신이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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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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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지와 환경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 늘과 사람을 원망 말라
스스로 구하면 새로운 길은 있어

군자는 어떤 상황이 다가오든
처해진 상황에서 ‘출구’를 찾는다

동양의 고전인 중용은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답을 얻어내는 자득(自得)의 정신을 제시한다. 가혹한 시련이 와도 남을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으려는 자세를 유지하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DBR 그래픽
동양의 고전인 중용은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답을 얻어내는 자득(自得)의 정신을 제시한다. 가혹한 시련이 와도 남을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으려는 자세를 유지하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DBR 그래픽
얼마 전 한 유명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잘생기고, 인기도 있고,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요즘 지위와 부를 모두 가진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자주 들린다. 연예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충격적인 죽음 뒤에는 우울증 상실감 등의 이유가 따라다닌다. 모두 정신적인 문제와 관련돼 있다. 성공한 이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내면의 슬픔과 고통이 그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으리라.

세상을 살다보면 정신을 힘들게 하는 일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부귀(富貴)와 빈천(貧賤), 환난(患難)과 공구(恐懼·두려움)는 모두 나의 정신적 안정감을 깨고 무너뜨리는 요소다. ‘중용(中庸)’에는 인생을 살면서 다가오는 외부적 충격에 대한 든든한 방어망으로 ‘자득(自得)의 정신 경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나(自)만의 답을 얻어내는(得) 정신적 방어체계다. 자득은 스스로 답을 찾아낸다는 뜻이다. 윗자리에 있든 아랫자리에 있든 자득의 경지에 이르면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하는 자는 자득의 경지에서 멀어져 있는 사람이다. 운명을 원망하지 말라! 두려운 것은 가혹한 운명이 아니라 그 운명에 굴복당하는 자의 마음이다.

“군자는 자신의 운명에 합당한 행동을 하나니 그밖에 것을 원하지 않는다(君子素其位而行不願乎其外). 부귀한 운명이 오면 부귀한 자의 행동을 하고(素富貴行乎富貴), 빈천한 운명이 오면 빈천한 자로서 합당한 행동을 하고(素貧賤行乎貧賤), 오지의 운명에 처하면 오지의 문화를 즐기고(素夷狄行乎夷狄), 환난의 운명을 당하면 환난의 길을 걸으리라(素患難行乎患難). 군자는 어떤 상황이 다가오든 그 상황에서 답을 찾는다(君子無入而不自得焉).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上不怨天), 아래로는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下不尤人). 군자는 담담하게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고(君子居易以俟命), 소인은 조급하게 요행을 바란다(小人行險以幸).” 필자가 늘 외고 다니는 ‘중용’의 구절이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정조대왕이 승하하자 나이 마흔에 전남 강진 해남 등지로 18년간 유배당하는 환난을 당했다. 그러나 다산은 무너지지 않았다. 비록 궁벽한 곳에 있더라도 정신적인 충만감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리고 300여 권의 책을 저술하고 주변 사람들을 제자로 받아들여 자신의 철학을 공유하는 화려한 꽃을 피워냈다. 모두 환난과 빈천에 무너지지 않는 자득의 정신 경계가 피워낸 문명(文明)이었다. 역경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자득은 새로운 문명과 꽃을 피워낸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긍정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처지와 환경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반드시 새로운 답을 찾아낼 수 있다는 희망과 긍정의 힘만 있다면 그 어려움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논어(論語)’에 군자에 대한 정의 중 ‘부지불온(不知不온)’이 있다. 이는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으니, 진정 군자의 모습이 아니런가(人不知不온 不亦君子乎)’라는 구절에서 왔다. 어떤 사람의 어떤 평가에도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군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흥분하지 않으며, 남들이 나를 비난한다고 해서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반성해서 옳다고 생각하면 천만 명 앞에서라도 당당히 맞설 수 있고, 스스로 반성해서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저 저잣거리의 걸인 앞에서라도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중용’에서 말하는 자득의 인간형과 닮아 있다. 죽을 용기와 힘이 있다면 그 용기와 힘으로 새로운 꽃을 피워낼 수도 있다. 계속되는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을 들으며 자득의 처방(處方)을 통해 우리의 정신을 더 굳건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61호(2010년 7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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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최고경영자(CEO)들의 연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CEO는 신년사나 언론 인터뷰에서 기업의 현재 성과나 경쟁력에 상관없이 변화와 혁신을 늘 강조한다. 그렇지만 실제 기업의 역사를 분석해 보면,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종류의 변화를 실행함으로써 지속적 경쟁 우위를 유지한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CEO들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변화 노력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까닭을 이해하려면 먼저 ‘상황 적합성 관점(Contingency Perspective)’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환경이 변했을 때 기업도 환경과 같이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 기업은 생존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외부 환경에서 조달하기 때문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거장 챈들러 교수는 이에 더해 ‘조직은 전략을 따른다(Structure follows strategy)’는 명제를 제시해 조직 특성은 그 기업이 추구하는 전략의 실행에 적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모든 전략은 환경의 요구에 적합하게 수립해야 하며, 조직은 선택된 전략의 실행에 적합하게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기업에서 조직이 전략을 규정(Strategy follows structure)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곧 수단과 목적의 전도라는 심각한 불합리성을 초래하며 초장기, 초우량 기업의 꿈을 좌절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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