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한국음식에 어떻게 문화를 담을까 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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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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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음식 애호가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美유학때 미술-클래식음악 심취
공장에 문화공간 열어 주민과 소통
자연 발효 조미료 ‘연두’ 개발
“한 식 세계화 위해 앞장설것”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이 20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강익중 작가의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지고’ 전시장에 들러 강 씨의 작품 ‘내가 아는 것’을 감상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이 20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강익중 작가의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지고’ 전시장에 들러 강 씨의 작품 ‘내가 아는 것’을 감상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그는 빨간색 ‘폴로’ 로고가 가슴에 새겨진 푸른색 남방과 청바지 차림으로 미술관에 왔다.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60). 화사한 봄날인 20일 박 사장의 모습은 휘파람 소리가 날 것 같이 경쾌했다. 평소 미술관 나들이를 자주 한다는 그는 설치미술작가인 강익중 씨의 전시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지고’(7일∼5월 2일)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를 인터뷰 장소로 정했다. 다음 달 ‘연두’라는 제품명으로 샘표식품의 첫 자연 발효 조미료를 내놓게 될 그는 미술관에서 어떤 ‘사적인 시간’을 가질까.

○미술과 클래식음악은 경영과 통한다


강 씨의 작품 ‘내가 아는 것(2009년)’ 앞에 함께 섰다. 강 씨가 일상에 대한 단상을 나뭇조각마다 한 글자씩 그린 벽화로, ‘2010 상하이 세계박람회’ 한국관에도 설치된 작품이다. 박 사장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 봤다. 이 작품 속 짧은 글귀 110개 중 그가 관심을 가진 글귀는 이랬다.

‘그림을 그릴 때 눈을 반쯤 감고 그려야 좋은 그림이 나온다.’

‘뒤축이 닳지 않는 구두를 만들면 큰돈을 벌 수 있다.’

그에게 “강익중 작가의 달 항아리를 닮은 간장 종지도 샘표가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국 음식에 문화를 담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며 “외국인에게 무조건 우리 것이 좋다는 우월성을 내세우면 안 되고, 새로운 우리 것을 흥미로워하게 만들어 그들의 삶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강 씨의 작품 글귀 중엔 이런 말도 있었다. ‘스며들면 깃들고 깃들면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서울대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석사)하고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철학박사가 된 ‘인문과 과학의 크로스오버 형’ 최고경영자(CEO)다. 최근 자신의 생일 때 직원들이 돈을 모아 선물해준 아이팟 터치로 직원들과 격의 없는 ‘트위터’ 소통을 한다. 식품업계 국악 CEO 모임인 ‘국악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멤버인 남승우 풀무원홀딩스 사장의 소개로 심리학자 정혜신 씨를 찾아가 4시간에 걸친 집중 심리 상담도 받았다고 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나와 심리분석 결과가 거의 일치해 놀랐어요. 다만 난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는데, 사실은 많이 받는다고 하대요.(웃음)”

고계원 아주대 수학과 교수인 아내와 스탠퍼드대 유학시절부터 미술과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 발을 깊숙이 들여놓았다. 처음 산 작품은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피카소 초상화 판화. 한국화가 사석원 씨의 그림도 몇 점 사서 조카들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클래식 음악은 처음에 하루 4시간씩 다른 일 하지 않고 온전히 KBS 1FM만 집중해 들었더니, 1년쯤 지나자 “귀가 트였다”고 했다.

○자연 발효 조미료로 꿈꾸는 한식 세계화


박 사장은 샘표식품 창업주인 고 박규회 회장의 장손으로, 16년간의 미국 생활동안 ‘특별히 원한 길은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샘표를 맡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는 준비된 CEO이기도 하다. 그는 1997년 샘표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후 ‘조용한 간장공장’이었던 이 회사의 체질을 바꿔왔다.

2004년엔 경기 이천에 있는 샘표 간장공장에 ‘샘표 스페이스’를 열었다.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하나로 문화에서 소외된 공장 직원 및 이천 일대 주민들을 위한 문화대안공간이다. 어린이 대상의 ‘간장공장 미술수업’은 기업과 지역 주민의 소통 채널이 됐다. 샘표 스페이스는 공장 근로자들에게 자기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명함도 만들어줬다. 최근엔 국내 젊은 신진작가 발굴과 후원에도 공을 쏟고 있다.

서울 중구 필동에서 운영하는 샘표식품의 요리교실인 ‘지미원’은 일반인 대상의 요리강좌뿐 아니라 ‘색다른 회식문화’를 원하는 요즘 기업들에게 인기다.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이색 체험을 통해 조직 융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샘표식품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간장이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전통 장류 기업이었다. 하지만 박 사장은 요즘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신 식품소재 개발에 정성을 들인다. 콩을 발효시키면 나오는 펩타이드 성분으로 건강기능식품도 개발 중이다.

다음 달엔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콩두 레스토랑에서 샘표식품의 자연 발효 조미료인 ‘연두’의 론칭 행사도 연다. 인공 첨가물을 일절 넣지 않았으면서도 샘표의 발효 노하우로 요리 본연의 맛을 감칠나게 살려주는 조미료란 설명이다.

“외국 조미료와 달리 한국의 조미료와 장류는 자기 맛을 강하게 내지 않으면서 음식맛을 살려주는 겸손한 미덕이 있어요. 우리 한식의 경쟁력이기도 하죠.”

박 사장은 인터뷰를 마치고 ‘2010 싱가포르 식품박람회’를 둘러보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하면서 말했다. “일본의 간장 명가 ‘기코망’이 일본 식품의 세계화에 앞장섰듯 ‘샘표’를 해외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우리의 발효기술은 세계가 관심을 가질 만큼 앞서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그의 자신감은 동양적이고도 세계적인 ‘강익중 전시’와 느낌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박진선 사장은

― 1950년 서울 출생
― 1968년 경기고 졸업
― 1973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 1979년 미국 스탠퍼드대 전자공학 석사
― 1988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철학 박사
― 1990년 샘표식품 기획실장
― 1997년 샘표식품 대표이사 사장
― 2008년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
― 대한상공회의소 유통물류진흥원 GSI코리아 운영위원회 위원
― 2009년 한국메세나협의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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