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전의 인사개혁 ‘공기업=철밥통’ 깨뜨렸다

  • Array
  • 입력 2010년 3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보직 못받은 차장급이상 52명 중 19명 회사 떠나

‘공기업=철밥통’이라는 공식이 깨졌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에서 지난해 무보직 처분을 받았던 직원 중 상당수가 해고나 희망퇴직 등을 통해 회사를 떠났다.

12일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차장급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한 공개경쟁 방식의 직위 공모에서 보직을 받는 데 실패한 52명 중 36.5%인 19명이 해임이나 직위해제,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나갔다. 그동안 공기업에서는 사규 등에 저촉될 만큼 큰 사고를 내지 않으면 정년을 마치기 전에 회사를 떠나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 한전 관계자는 “공개경쟁 방식의 인사시스템에 따라 무능력하거나 불성실한 직원, 생활태도가 매우 불량한 직원 등이 걸러지면서 해고 등 퇴출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의 인사시스템은 코레일, 한국관광공사, 한국거래소 등에서 벤치마킹하고 있어 무보직자에 대한 퇴출 움직임이 다른 공기업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본보 2009년 2월 9일자 A1면 참조 한전 간부 41명 첫 무보직 처분

한전은 지난해 차장급 이상 4169개 모든 보직에 직원들이 지원하게 하고 부서장이 능력 있는 직원을 뽑아서 쓰는 공개경쟁 방식의 보직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불성실, 무능력 등의 이유로 보직을 못 받은 직원이 52명 나왔다. 이 중 33명은 6개월간의 자체 교육과정을 거쳐 현업에 복귀했지만 19명은 퇴출됐다. 해고 1명, 직위해제 1명, 희망퇴직 17명이다.
부서장들 발령 직후 8시간동안 격리
인사청탁 원천봉쇄뒤 부하직원 뽑아

한전 관계자는 “6개월간의 리프레시(refresh) 교육과 1개월의 재교육을 거친 뒤에도 업무 복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1명은 해고됐고 스스로 회사에서 살아남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직원들은 희망퇴직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개인 비리와 관련해 소송 중인 1명은 사규에 따라 직위해제됐다.

2009년 12월 14∼21일 실시한 2010년 인사에선 보직경쟁에서 탈락한 직원이 68명으로 지난번보다 31% 늘었다. 이들 중에는 업무에 지나치게 소극적이거나 업무 성과가 매우 떨어지는 직원, 반복적으로 징계를 받은 직원 등이 포함됐다.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음주 후 직원들에게 심한 행패를 반복한 직원도 들어 있다. 이들은 6개월간의 교육을 거쳐 업무 복귀 여부가 결정된다.

또 한전은 올해 인사에서 청탁을 없애기 위한 새로운 장치를 도입했다. 처장 실장 등 최고위 간부들도 김쌍수 한전 사장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서야 자신의 보직을 알 수 있었다. 보직을 받은 뒤에는 외부와 격리된 상태에서 8시간 동안 인사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부서원에 대한 인선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휴대전화는 따로 보관됐고 감사실 직원이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외부와 불필요한 연락을 하지 못하게 감시했다.

한전 인사처 관계자는 “직원들은 부서장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지원을 하고, 부서장은 자신의 보직이 결정된 이후 격리된 상태에서 인사를 하기 때문에 청탁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며 “어떤 형태로든 부적절한 행동이 이뤄질 소지를 없애야 인사권자도 불필요한 청탁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인사를 앞두고 임직원 전체에게 ‘청탁과 로비 없는 깨끗한 인사 정착을 위한 당부’라는 제목으로 e메일을 보내 “청탁을 한 직원은 무보직 등으로 확실하게 불이익을 주고, 청탁 전력이 있는 직원은 승진에서 철저히 배제할 것”이라며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