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죽음 앞두고 당당할 수 있는 ‘盡人事’

  • Array
  • 입력 2010년 1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맹자 ‘진인사대천명’의 핵심은
결과가 아닌 최선을 다하는 과정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처하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후 결과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동양의 이상적인 인격자인 군자(君子)는 진인사대천명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DBR 사진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처하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후 결과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동양의 이상적인 인격자인 군자(君子)는 진인사대천명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DBR 사진
인간의 삶은 언제나 예상할 수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도 없는 일들로 채워져 있다. 불확실성이 가져오는 불안과 공포를 완화하기 위해 서양인들은 초월적 존재인 신에 의지했다. 그렇다면 동양인들은 과연 어떻게 대처했을까.

동양인의 대응 방식을 알려주는 구절이 바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사람의 일을 모두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는 뜻의 이 구절은 중국 남송의 유학자 호인(胡寅)이 저서 독사관견(讀史管見)에서 처음 사용했다. 서양인들이 신에게 기도할 때, 동양 사람들은 조용히 천명을 기다렸다.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 신에게 기도부터 하는 태도와 구체적인 일을 수행한 후 천명을 기다리는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과연 천명이란 무엇이고, 천명을 기다리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험준한 산을 오르고 있다고 가정하자. 어느 순간 우리는 정상이 눈앞인데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앞으로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바로 이때 인간은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일과,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할 수 없는 일의 경계에 도달한다.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지, 살아서 산을 내려갈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내가 최선을 다했느냐 아니냐다.

이렇듯 진인사대천명의 핵심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진인사’에 있다. 그래야만 자신이 할 수 없는 일, 즉,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한계 상황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계 상황과 마주해야 이게 나의 천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한 결과는 인간의 역량을 넘어선 영역에 있다. 결과가 좋으면 감사히 받아들이고, 결과가 나빠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맹자가 천명을 ‘자신의 도(道)를 다하고 죽는 것이 바로 올바른 명(命)’이라고 풀이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양에서 이상적인 인격자라 칭하는 군자(君子)와 진인(眞人)의 특성은 생사(生死)에 초탈한 사람들이다. 이 특성 역시 진인사대천명과 무관하지 않다.

군자와 진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극한에 이를 때까지 최선을 다해 수행했던 사람들이다. 그 한계 상황에서 설사 죽음과 마주할지라도 기꺼이 그 죽음을 받아들였다. 이들이 죽음 앞에서도 삶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 없이 당당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본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자신의 삶에 미련을 가지겠는가.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죽음과 마주해야 한다면 그게 바로 그 사람의 천명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난 뒤 조용히 그 결과를 기다리는 태도, 어떤 결과가 나오든 기꺼이 수용하는 태도야말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깊이 되새겨야 할 교훈이다.

강신주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 contingent@naver.com

정리=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9호(2010년 1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개인 구독 문의 02-721-7800, 단체 구독 문의 02-2020-0685

▼ 민재형 교수의 의사결정 미학(美學)/직관+이성, ‘판단의 정석’을 갖춰라
엘리베이터의 수가 적어 불편한 빌딩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집중한다. 운행 방법을 바꾸거나 속도를 올리는 해법을 낸다. 대안을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의적인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해법을 생각해낸다. 대안에 매몰되지 않고, 가치 중심의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 오류를 초래하는 인간 정보처리시스템의 한계와 원인을 소개한다.

▼ Competitive strategy in Practice/기업, 때론 소비자 가르쳐야
21세기 소비자는 기업이 물건을 판매하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기업의 경쟁 우위를 창출하는 주체이자 새로운 원천이다. 애플처럼 소비자와 함께하는 경영전략으로 성공하는 기업이 되려면 소비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소비자 커뮤니티를 움직인 후, 소비자의 개인적 경험을 같이 만드는 식으로 개별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관리해야 한다.

▼ Negotiation Newsletter/협상 성패, 준비 단계서 결정된다
케이와 아이반 부부는 딸 제인 문제로 서로를 피하고 있다. 아이반은 제인에게 사업 종잣돈 1만 달러를 그냥 주려고 한다. 케이는 그런 남편이 못마땅하다. 딸 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이들 부부의 문제는 무엇일까. 상대방이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탓할 필요는 없다. 당사자들이 준비 단계부터 서로 협의하며 협상의 탄탄한 토대를 마련했다면 이런 상황은 피했을지도 모른다. 협상 준비 과정이 본협상만큼 중요한 이유다.

▼ 전쟁과 경영/통조림의 위력:우린 적어도 굶어죽진 않는다
1942년 버마(현 미얀마)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 15군은 정글 지대를 통과해 인도 북부지역의 인팔을 점령하는 작전을 세웠다. 일본군은 험악한 도로와 정글을 뚫고 나가야 했다. 문제는 식량 등의 보급이었다. 일본군은 오래전 이 루트를 정복했던 칭기즈칸의 군대처럼 수천 마리의 양과 소를 끌고 전투에 나섰다. 통조림을 먹는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승리를 거뒀을까. 전쟁에서 승리하고 최고의 생산성을 올리려면 기본적인 욕구 해결이 필요하다. 기업이라고 다를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