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코리아’ 원년… R&D투자 늘려 ‘세계최고 기술’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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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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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원전 수주 주역들 ‘원전산업 전망과 과제’ 좌담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의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김쌍수 한국전력 사장, 박군철 원자력학회 회장. 이들은 원자력 산업 발전을 위한 과제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재명 기자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의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김쌍수 한국전력 사장, 박군철 원자력학회 회장. 이들은 원자력 산업 발전을 위한 과제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재명 기자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수주는 한국에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의 시작이다. 수주가 발표된 지난해 12월 27일을 ‘원자력의 날’로 정한다는 얘기도 있고 유공자를 포상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말한다.

원자력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 최경환 장관, 컨소시엄의 맏형 역할을 했던 한국전력의 김쌍수 사장, 높은 기술력으로 수주에 기여한 두산중공업 박지원 사장, 브레인 역할을 한 원자력학회 박군철 회장이 31일 정부과천청사 지경부 장관실에서 만나 한국 원전 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번 수주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최경환=30년 동안 원자력업계가 노력해서 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거기에 대통령이 나서고 관련 부처와 한전을 비롯한 컨소시엄 팀들이 총력전을 전개한 결과다. 이 모두가 결합돼 한국 원전의 첫 수출을 이뤘다.

▽김쌍수=역사를 보니까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00달러일 때 원전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준비한 박정희 대통령이 대단한 분이다. 그걸 시발점으로 해서 체르노빌 사태로 각국이 원전을 줄일 때도 우리는 굳건히 계획대로 건설했다. 그런 기술력이 뒷받침이 됐다. 중요한 건 세계적으로 원전이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 있는데 첫 단추인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을 우리가 따냈다는 점이다. 웨스팅하우스의 대주주인 일본 도시바 최고경영자(CEO)가 축하 메시지를 보냈는데 ‘한국의 영광이 아니라 아시아의 영광이다’라는 대목이 있더라.

▽박지원=한국은 원전을 계속 지어왔기 때문에 최근 10년 공급실적을 놓고 보면 세계에서 두산중공업만큼 기자재를 공급한 곳이 없다. 프랑스 아레바가 많이 했다고 하지만 최근 10년 실적을 비교하면 우리의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이런 공급 실적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원전 기자재는 워낙 크기 때문에 소재 확보가 납기에 영향을 미친다. 두산중공업은 이 소재를 직접 제작할 능력도 있고 미리 확보해 놓은 것도 많다. 세계적으로 이를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은 두산중공업과 일본 JSW, 프랑스 아레바의 CFI 등 세 곳뿐이다.

▽박군철=우리가 30년 동안 안전하게 운전해 왔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20기를 운전하면서 큰 고장이 없었고 사고도 거의 없었다. 운전 정지는 세계 평균이 기당 연 1회인데 우리는 0.5회, 프랑스는 1.8회다. 우리가 프랑스보다 4배 가까이 안전한 셈이다. 지난해 원전 건설 30주년 기념으로 20기를 전부 안전점검했다. 당시 외국 전문가를 2명씩 데리고 20기를 방문했는데 모두가 안전성에 놀랐다.

―앞으로의 과제는….

▽최=반도체나 조선을 할 때도 처음엔 우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지만 집념을 불태우고 노력한 결과 세계적인 수출 산업으로 키웠다. 원전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가려면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대표적인 게 연구개발(R&D)이다. 정부가 R&D 투자를 많이 하려고 한다. 인력 양성 체제도 갖추겠다. 원자력 전문대학원과 함께 단기 인력 양성 과정도 만들겠다. 본격적으로 인력이 필요한 시기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산업이 뜰 거라는 희망을 주지 않으면 젊은 인력이 안 간다. 미래 산업으로 원전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각종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경쟁력을 갖추려면 뭘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실 전체적인 산업구조가 한 번은 휘청해야 한다. 지금 정상에 있는 산업은 눈물겹게 버텨서 정상에 섰다. 현재의 우리 원자력 업계 수준으로는 솔직히 세계 톱이 되기 힘들다. 뭔가 더 도전을 받아야 한다. 이 업계는 정부 눈치만 보고 줄만 잘 서면 먹고산다는 풍토가 있다. 다른 업계에서 1등 하는 곳은 ‘못하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낭떠러지 전략이다. 여긴 아주 따뜻하다. 이래서는 못 이긴다. 이번을 계기로 이래선 못살겠구나 하는 도전을 받아야 할 시기가 왔다. 그래야 1등이 된다. 국내 무대에선 잘못해도 용서가 되지만 국제무대에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최=인력을 백날 키워놓더라도 산업 자체가 형성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제2, 제3의 수주에 성공하고 국내 원전 건설도 가속화하면 기회가 생길 것이다.

▽박지원=수출 산업으로 성장하려면 내수가 기반이 돼야 한다. 정부가 원전 비중을 늘리겠다고 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 내수에 적용하면서 실적을 쌓아야 해외에서 인정을 받아 수출할 수 있다.

▽박군철=해외 진출에 대비한 인력 양성은 당연한 말씀이다. 학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다. 국내에 원전을 많이 짓고 있지만 해외에서 붐이 일면 우수 인력은 해외로 가버린다. 그러다 세계 어디선가에서 사고 한 번 나면 또다시 제자리걸음이다. 사용 후 핵연료 문제, 한미 원자력협정, 용지 선정 등 많은 전문가가 필요하다. 인허가 규제 관련 인력도 중요하다.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연구 인력이 필요하다. 단시일에 양성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가 지혜롭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그런데 이렇게 산업이 뜰 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늘려도 나중에는 모자란다. 이래저래 따지고 하면 늦다.

▽최=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원자력 산업을 미래 산업으로 키워야 젊은이들을 고용할 수 있다. 그래야 젊은이들이 원자력 분야 대학을 가고 커리어도 그쪽에서 쌓는다.

―방사성폐기물 관리는 어떻게 하나.

▽박지원=원자력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온실가스 얘기를 하면 풍력과 태양광만 나온다. 하지만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이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원자력인데 그 부분에 대한 홍보가 잘 안된 측면이 있다. 원자력에 대한 인식이 안 좋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원자력이 온실가스에 대한 대안이라는 인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정부 부담도 줄어든다.

▽최=방사성 폐기물은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안전성 문제에 과장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홍보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자력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용 후 핵연료와 관련해서 너무 과도하게, 예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먹고 나면 배설물도 처리해야 하지 않느냐. 그런 부분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김=이런 건 교수님들이 좀 얘기해 줘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해도 안 믿는다.

▽박군철=무식한 게 무서운 게 아니고 맞지 않은 사실을 너무나 많이 알고 있는 게 무섭다. 모르면 다행인데 왜곡된 사실을 많이 알고 있는 게 가장 무섭다는 얘기다. 국민 신뢰 문제는 학회와 학자들이 적극 나설 것이다. 전문가 그룹에서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김=우리는 재처리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검토를 해보니 재처리 공장을 짓는 건 아직 경제성이 없다. 프랑스에 위탁해 재처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번 수주 과정에서 UAE에 반대급부로 뭔가 많이 준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최=UAE는 자원부국이고 돈이 많다. 아쉬운 게 없는 나라다. 이번 사업은 서로가 이익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간다. UAE는 에너지 안보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파트너다. 한국이 경제적인 부담을 지기로 얘기했다면 당연히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번 건에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 없다.

▽김=입찰에서 진 사람은 뭔가 변명을 해야 한다. 그걸 그대로 받아가지고 덤핑이라느니 얘기한다. 이익이 남는다는 전제하에 딴 것이다. 당장 얼마 남느냐고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모두 무식한 거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 참석자들은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45)
두산중공업은 꾸준한 국내 원전 건설 경험을 바탕으로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를 위한 컨소시엄에서 중요한 파트너로 참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플랜트 건설로 잘 알려진 두산중공업은 원자로를 만드는 국내 유일의 원전 기자재 제작 업체이기도 하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55)
17대와 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경북 경산-청도)으로 9월부터 지경부 장관으로 일하고 있다. 취임 100일 만에 경사가 생겨 “난 운 좋은 장관”이라고 말한다. 이번 수주를 계기로 원자력 발전 산업을 제대로 키워 보겠다고 다짐한다.
김쌍수 한국전력 사장(65)
민간기업 출신 최초의 한전 사장으로 공기업인 한전에서 민간기업에 필적하는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번 수주에 실무 차원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 한국 원전 업계가 피나는 노력을 통해 진정한 세계 최고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박군철 원자력학회장(58)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이번 수주를 계기로 세계 최고의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즐거워하고 있다. 사용 후 핵연료 등 사후 관리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선 앞으로 학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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