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IT 추락… 제2금융은 명예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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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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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 ‘대출 관리업종’으로 본 한국산업 흥망성쇠


음식 등 자영업은 줄곧 지정
작년엔 조선-화학업 추가돼
경쟁력보다 업종따라 규제
관리종목制 보완 목소리도


등산복에 사용되는 기능성 섬유를 생산하는 화학섬유 제조업체 F사는 올해 8월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담당자 8명을 초청해 회사 현황과 비전을 설명하고 생산 현장을 소개했다. 2004년부터 화학섬유 제조업이 시중은행의 ‘대출 관리업종’에 지정되면서 대출 받기가 까다로워지자 이런 행사를 마련한 것이다.

대출 관리업종은 시중은행이 경기나 사업환경 등이 나빠져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큰 업종을 ‘요주의 업종’으로 지정해 대출을 관리하는 제도다. 연체율과 부도율 등으로 업황이 악화된 업종을 선정한 뒤 해당 업종에 속한 기업들에 대출조건을 더욱 엄격하게 따지고 대출한도를 줄이는 식이다.

동아일보가 2003년부터 올해 9월까지 시중은행 3곳의 대출 관리업종 현황을 분석한 결과 87개 업종이 대출 관리업종에 한 번이라도 지정돼 대출 제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 산업계의 흥망성쇠를 조감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영세 자영업자는 줄곧 ‘대출 관리’

2003년 이후 한 번도 빠짐없이 대출 관리업종에 이름을 올린 업종은 모두 8개다. 음식점 및 숙박업종, 음식료품 도매업, 농축산물 가공·도매업, 가방·가죽 제품 제조업, 건설업, 정장 제조업, 가구제조업, 건축마무리공사업이다. 대부분 영세 자영업자나 소규모 사업자들이 속한 업종이다.

관리업종으로 지정되면 웬만한 자금력이나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아니면 대출 받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들 업종의 자영업자들은 지난 7년 동안 사실상 대출 받을 길이 막혀 있던 셈이다.

외환위기 이후 실직자들이 음식점업, 숙박업과 같은 자영업으로 대거 몰리면서 이들 업종이 대출 관리업종의 터줏대감이 됐다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다.

○ IT업종은 황금업종에서 골칫덩이로

한때 전성기를 누리며 ‘황금업종’으로 대우를 받다가 대출 관리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은행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업종도 많다. 정보기술(IT) 관련 업종이 대표적. 1990년대 후반 벤처 붐과 함께 전성기를 맞았던 IT 관련 업종은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관리업종에 지정됐다. 2005년 현주컴퓨터 부도에 이어 당시 국내 2위의 PC제조업체였던 삼보컴퓨터마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그해 컴퓨터 도소매업이 바로 관리업종에 선정됐다.

화학제품 및 고무, 플라스틱 제조업은 지난해부터 대거 대출 관리업종에 포함됐다. 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과 밀접하게 연관된 산업 환경 탓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큰 타격을 받은 조선업도 지난해부터 대출 관리라는 굴레를 썼다.

은행 대출 길이 막혔다가 관리업종에서 해제되면서 되살아난 업종도 있다. 2003년 신용카드 대란으로 연체율이 급격히 올랐던 카드사와 저축은행, 벤처캐피털 등 제2금융권은 2007년에 관리업종에서 풀려났다. 부동산시장 침체로 부진을 면치 못했던 부동산업도 집값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2007년 관리업종에서 해제됐다.

○ 목욕업, 대부업은 정부 정책에 따라 대출 제한

정부 정책이 대출 관리업종을 지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2004년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면서 퇴폐업소에 대한 대출을 막기 위해 욕탕업이 관리업종에 지정됐다. 사행성 게임인 ‘바다이야기’ 파문이 일어난 2006년에는 게임·소프트웨어 업종이 잠시 관리업종에 오르기도 했다. 대부업체가 급증하자 2007년부터는 은행 자금이 고리대금업에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부업이 관리업종으로 지정됐다.

대출 관리업종 지정을 통한 은행의 대출 관행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기술 경쟁력이 높은 기업마저 대출 관리업종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자금난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소프트웨어 제조업체 임원은 “대출 관리업종에 지정되면 신용이 1, 2등급 아니면 사실상 대출이 어렵다”며 “경쟁력 있는 기업은 예외로 해주는 탄력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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