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업체 과징금 대폭 후퇴한 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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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4일 03시 00분


법리서 밀렸나, 액수에 눌렸나
“물증 확실… 1조 자신” 기세, 업체측 로펌들 반격에 주춤
“담합 경고효과 이미 얻어” 공정위 숨고르기 중 분석도

사상 최대 과징금 부과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액화석유가스(LPG)업체의 담합 제재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 내부에서 미묘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된다. 12일 전원회의가 열리기 전만 해도 공정위 측은 “확실한 물증이 있어 쉽게 끝난다”며 이날 예상대로 과징금 부과가 결정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공정위 실무자들은 “담합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1조 원대의 사상 최대 과징금을 매길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공정위는 전원회의를 열기 직전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LPG 담합 건을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차원에서도 대체적인 의견 조율은 거쳤다는 의미다.

그러나 공정위의 강경한 기류는 전원회의를 기점으로 바뀌고 있다. 정호열 공정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핵심 쟁점이 많고 법리적 판단이 복잡해 추후 추가 심의를 하겠다”며 심의를 연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정 위원장이 13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초청강연에서 과징금 감면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전날의 제재 연기도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됐다.

공정위가 기세등등했던 LPG 담합 건에 대해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 배경에 산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먼저 ‘공정위가 논리 대결에서 밀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가 자신감을 가진 것은 6개 LPG업체 중 두 곳으로부터 담합사실을 자진 신고받으면서 담합을 입증할 만한 물증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특히 LPG업체들이 공정위 조사에 대비해 관련 자료 폐기를 지시한 내부 문건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원회의에서 LPG업체 측을 대표해 나온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은 자진 신고한 회사로부터 받은 자료의 진위에 의문을 제기했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내용에 대해서도 로펌 측은 관계자들의 구체적인 알리바이를 대며 담합 사실을 부인했다.

‘1조 원대의 과징금 액수는 상식의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지나치게 많다’는 산업계의 불만도 일정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박사는 “과징금을 1조 원으로 가정했을 때 자진신고한 업체 2곳을 빼면 산술적으로 업체당 2500억 원을 내야 한다”며 “그 금액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여서 잘못을 바로잡는 징벌적 성격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공정위 시각에서 보면 의도한 효과를 어느 정도 얻었기 때문에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1조 원대의 과징금을 매길 것이라는 얘기가 퍼지면서 다른 업종에도 담합을 단념하게 하는 ‘시그널’을 확실하게 전달했다는 것.

이에 따라 25일경 다시 열릴 예정인 전원회의에서 공정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정 위원장은 “LPG 사건은 쟁점이 많고 사건규모도 커서 2주일 뒤에 다시 심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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