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챔피언’/해외 기업들]<상>기존 제품에 ‘친환경’ 옷을 입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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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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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세 佛업체-라면원조 日기업 ‘녹색 회춘’

《네덜란드의 건설회사 옴스는 2001년 물 위에 떠 있는 집을 내놓았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점점 높아지는 데 착안해 만든 집이다. 이 회사가 최근까지 5000여 채의 떠 있는 집을 팔아 인기를 끌자 이런 집을 지을 수 있는 물 위 공간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호수, 저수지 등이 대부분 사유지(私有地)인 네덜란드에선 지역에 따라 ‘물값’이 ‘땅값’ 수준으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옴스는 지구에 닥치고 있는 환경 위기를 사업 기회로 활용한 사례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환경 경영’이라고 하면 정부의 규제에 맞추거나 자원 재활용률을 높이는 정도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활동이었다. 하지만 환경 경영에 일찍 눈을 뜬 유럽과 일본에선 옴스처럼 위기를 이용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는 기업이 늘고 있다.

동아일보는 환경 경영을 무기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해외의 ‘그린 챔피언’ 기업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대기업도 있지만 매출이 수천억 원에 불과한 중견기업도 있다. 환경 경영의 시대에 혁신적 변화는 기업의 의지와 아이디어에서 오는 것이지 기업 규모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이미 잘나가고 있는 기업들도 ‘친환경 제품’을 시도하는 모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인스턴트 라면과 컵라면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일본 닛신식품은 컵라면 용기를 스티로폼에서 유리로 바꾼 ‘리필 컵라면’을 선보였다. 유럽 고급 그릇 시장에서 1위인 프랑스의 아크인터내셔널은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을 크게 줄인 중저가 제품 라인을 도입해 글로벌 금융위기 시대에 주머니는 얇지만 친환경에 관심이 높은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계측기 제조로 유명한 일본 시마즈제작소에는 환경 관련 사업 아이디어만 쫓아다니는 ‘지구환경관리부’라는 독특한 부서가 있다. 이들은 잘 갖춰진 환경 경영 시스템을 활용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사례다.》
■ ‘低에너지’ 신소재 와인잔 제조 佛 아크인터내셔널


프랑스의 아크인터내셔널은 제품 포장을 재생용지로 만들고 불필요한 무늬 등을 없애 생산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인
‘그린테이블’ 식기 제품을 만들었다. 또 유해 논란이 있는 산화납이 들어간 크리스털 와인잔 대신 ‘쿽스(Kwarx)’라는
신소재를 사용한 새 와인잔도 선보였다. 본사 공장에서 한 직원이 와인잔의 마지막 공정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제공 아크인터내셔널
프랑스의 아크인터내셔널은 제품 포장을 재생용지로 만들고 불필요한 무늬 등을 없애 생산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인 ‘그린테이블’ 식기 제품을 만들었다. 또 유해 논란이 있는 산화납이 들어간 크리스털 와인잔 대신 ‘쿽스(Kwarx)’라는 신소재를 사용한 새 와인잔도 선보였다. 본사 공장에서 한 직원이 와인잔의 마지막 공정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제공 아크인터내셔널
제조에 드는 에너지, 크리스털의 70%
재생 포장지-녹색 식물성 잉크 인쇄
고급식기社의 저가 친환경 그릇 돌풍


공장 한쪽에서는 트럭이 쉴 새 없이 유리의 원료인 모래를 퍼날랐다.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산지인 벨기에에서 프랑스 서북부의 아르크 시까지 운하를 통해 배로 운반된 모래였다. 트럭은 항구와 공장을 오가는 데만 사용됐다. 배를 이용하면 트럭으로 운반하는 것보다 CO₂ 발생량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지난달 12일 찾은 유럽 최대의 식기 제조업체 아크인터내셔널 본사 모습이다. 유리 용광로의 열기로 공장 내부는 후끈했고, 공장 주위에는 꽃과 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었다. 환경친화적 분위기가 환경친화적 제품을 만든다는 생각에 이 회사는 정원을 관리하는 정원사만 40여 명 고용했다.

○ 1위 제품에 ‘녹색 옷’을 입히다

아크인터내셔널은 강화유리로 그릇, 접시, 머그컵 등을 만든다. 유리로 식기를 만들면 도자기로 만들 때보다 에너지 소비가 25% 줄고, 물도 50% 적게 쓴다는 이유에서다. 유리로 만들었지만 겉은 도자기처럼 보였고 강도도 높았다. 수출 코디네이터 앙투안 카믈로 씨는 기자 앞에서 직접 이 회사의 컵으로 컵받침을 강하게 내리쳤다. 아무것도 깨지지 않았다. 이 회사는 이런 강화유리 식기브랜드 ‘루미낙’으로 유럽 1위의 식기회사가 됐다.

고급 제품만으로도 잘나가는 회사였지만 이들은 지난해 대대적 혁신을 했다. ‘그린테이블’이라는 중저가 친환경 브랜드를 만든 것이다. 그린테이블 제품은 무늬 없는 단색인 데다 포장도 누런 재생용지와 녹색 식물성 잉크로 만들어 단순하다. 자연히 에너지 소비가 줄고, 생산 비용도 절감돼 가격은 고급 제품보다 평균 30%가량 낮아졌다. 이 제품은 친환경 제품을 찾는 소비자는 물론이고 중저가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조제마리아 올로트 부회장은 “2월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에서 그린테이블 제품을 선보이자 딜러들의 주문이 쏟아졌다”며 “‘친환경 기업’이란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루미낙으로는 진출하기 힘들었던 중저가 시장도 공략하게 됐다”고 말했다. 1위 제품에 ‘녹색 옷’을 입히자 새로운 시장이 열린 것이다.

또 다른 주력제품인 와인잔도 변했다. 이 회사는 최근 ‘쿽스(Kwarx)’라는 신소재로 와인잔을 만든다. 기존 와인잔 재료인 크리스털의 대체재다. 제조 과정에 드는 에너지가 크리스털보다 30% 줄었고, 가격도 더 싸졌다. 크리스털잔에는 산화납 성분이 있어 잔이 부딪칠 때마다 ‘쨍’ 하는 특유의 소리를 내지만 잔을 씻을 때 이 산화납이 일부 빠져나올 가능성이 있다. 쿽스잔은 크리스털잔 같은 소리를 내지는 못해도 유해 논란에선 자유로워졌다.

○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안목

친환경 제품을 추진할 수 있었던 근본 배경에는 창업자 가문인 뒤랑 가(家)가 있다. 184년 동안 수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이들은 기업 공개로 큰 부자가 되기보다 주식을 100% 소유함으로써 ‘가족 기업’을 유지했다. ‘이윤 추구에 앞서 사회와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창업정신을 지키기 위해선 주주가 많은 것보다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2007년 창업자 가문의 오너 3세가 별세한 뒤에는 9명의 임원진으로 구성된 ‘경영위원회(Executive Committe)’가 경영을 맡고 있다. 이들의 의사결정 기준 또한 ‘창업 정신’이 최우선이다. 단기 실적에 따라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물러날 우려가 없기 때문에 당장의 돈벌이에 급급하지 않고 친환경 제품 생산과 같은 장기적 발전을 도모하는 데 유리하다. 이런 기업 문화 덕분에 이 회사는 노동운동이 강한 프랑스에서 ‘184년 무파업’이라는 부수적인 이득도 챙길 수 있었다.

아르크(프랑스)=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 유리 용기 ‘리필 컵라면’ 생산 日 닛신식품


일본의 닛신식품은 컵라면의 용기를 유리로 만들고, 용기가 없는 내용물만 따로 살 수 있는 ‘리필 컵라면’을 만들어 판매한다. 또
컵라면 주력제품인 ‘컵누들’ 시리즈의 컵도 발포스티로폼에서 종이로 바꿨다. 사진 속 여우 그림이 그려진 제품이 리필 컵라면의
유리 용기, 그 왼쪽이 리필용 라면이다. 도쿄=김상훈 기자
일본의 닛신식품은 컵라면의 용기를 유리로 만들고, 용기가 없는 내용물만 따로 살 수 있는 ‘리필 컵라면’을 만들어 판매한다. 또 컵라면 주력제품인 ‘컵누들’ 시리즈의 컵도 발포스티로폼에서 종이로 바꿨다. 사진 속 여우 그림이 그려진 제품이 리필 컵라면의 유리 용기, 그 왼쪽이 리필용 라면이다. 도쿄=김상훈 기자
“용기 쓰레기 줄이자” 친환경 실험
일반 컵라면도 ‘에코 종이컵’ 사용
“도태 안되려 미래 녹색시장 선점”


지난달 19일 일본 도쿄의 대형 유통매장 이온(AEON)의 라면 판매대. 닛신식품(日淸食品)의 ‘리필 컵라면’ 진열장에는 군데군데 빈자리가 있었다. 이 매장의 라면 판매 담당 직원은 “리필 컵라면이 인기가 좋아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공간에 따로 배치해 놓았는데 자주 채워 놓아도 금세 팔려나간다”고 말했다.

닛신식품은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과 컵라면을 만든 회사다. 일반적으로 인스턴트식품은 친환경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닛신식품은 일본 내에서 대표적인 친환경 기업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 인스턴트식품 회사의 친환경 실험

닛신식품은 2008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 매출액이 3620억 엔(약 4조7060억 원)이다. 이 중 라면 매출이 90%에 이르는 ‘라면 기업’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커다란 실험을 시작했다. 컵라면의 용기를 유리로 만들고, 그 안에 넣는 내용물만 ‘리필’할 수 있는 봉지로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 사람들이 컵라면을 사는 이유는 조리하기 편한 것과 동시에 그릇을 설거지할 필요 없이 쉽게 버리면 된다는 점도 있다. 리필 컵라면은 버리기 쉽다는 컵라면의 장점을 완전히 포기한 셈이다.

이 회사가 친환경 제품 생산에 눈을 돌린 건 2001년 일본 최대의 전자회사 소니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이 내부에 중금속이 들었다는 이유로 네덜란드 수입이 금지되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일본 기업들 사이에는 환경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식품회사 가운데에는 닛신식품이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다. 4년 전 슬로건을 ‘맛있는 것, 그 이상의 것’으로 바꿨다. ‘그 이상’이 바로 환경을 뜻했다. 앞으로 일본 소비자들이 친환경 식품을 찾을 때 이 시장을 선점하자는 뜻에서였다.

리필 컵라면의 매출액은 컵라면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한다. 1년의 실험 치고는 훌륭한 성과다. 미래는 현재보다 더 밝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은 많이 안 팔려도 언젠가는 팔릴 것이고 그때를 미리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1958년 처음으로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누가 라면을 뚝딱뚝딱 만들어 먹겠느냐고 했고, 1971년 컵라면을 만들자 누가 라면에 뜨거운 물만 부어 먹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꿋꿋하게 시장을 만들어 왔다. 닛신식품 내에선 친환경 제품도 그럴 것이라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 소비자가 찾는다

닛신식품은 주력 제품인 일반 컵라면 용기도 값싼 발포스티로폼 대신 환경친화적인 종이컵으로 바꾼 뒤 ‘에코컵(ECO-cup)’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종이로 여러 겹 붙여 만든 에코컵의 용기는 원가가 훨씬 비싸다.

가격의 변화를 보면 이들이 왜 ‘친환경’ 컵라면을 내놓는지 짐작할 수 있다. 종이로 에코컵을 만든 것이 작년 4월이었다. 3개월 전인 1월에는 컵라면 가격을 150엔에서 15엔 올렸다.

또 리필 컵라면은 유리컵과 리필 라면 1개를 묶어 ‘스타터 세트(Starter Set)’라는 이름으로 1000엔 정도에 판매한다. 일반 컵라면의 6, 7배 수준이다. 용기가 없는 리필용 봉지 1개는 일반 컵라면과 가격이 비슷한 150엔 수준에 판다. 적게 팔아도 이윤이 많이 남는 제품이다. 게다가 판매처도 이온을 비롯한 일부 대형 매장 등으로 제한돼 있어 물류비가 많이 들 우려도 없다.

닛신식품이 환경 경영에 힘을 쏟는 이유는 간단했다. 닛신식품 홍보부의 쓰타야 가즈시게 계장은 “일본 소비자들은 면발이 얼마나 쫄깃한지 서로 경험을 나눠가며 라면 회사를 평가할 정도로 섬세하고 까다롭다”면서 “이들이 어느 순간 환경에 관심을 돌린다면 준비되지 않은 회사는 도태될 것”이라고 했다.

도쿄(일본)=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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