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진 ELS “원금에 이자까지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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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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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험 파생상품, 안전 위주 정기예금 닮아가
“만기도래 100조 잡아라” 증권-은행 경쟁 가열

이쯤 되면 ‘파생상품의 굴욕’이라고 할 만하다. 수익률이 높은 대신 원금손실 위험도 함께 안고 있었던 주가연계증권(ELS)이 원금보장형 상품에 이어 이젠 확정금리나 다를 바 없는 기본수익률까지 지급하겠다고 나섰다. 원래 ELS는 일반 주식투자보다는 안전성이 높지만 한 번 주가 예측이 틀리면 원금이 크게 손실날 수 있는 대표적인 고위험 파생상품이었다. 그런 만큼 ELS의 ‘안전지향형 진화’는 격세지감마저 느끼게 한다.

○ 정기예금인가, 파생상품인가?

우리투자증권이 22일까지 판매한 ‘ELS 2701호’는 기초자산인 코스피200이 만기까지 한 번이라도 30% 넘게 상승한 적이 없으면 상승률의 23%만큼을 수익으로 준다. 또 한 번이라도 30% 넘게 오르거나 심지어 지수가 하락하더라도 기본으로 3.5%의 수익을 보장한다. 이 상품에 투자하면 기본으로 원금의 3.5%는 확보하고 운이 좋으면 이보다 더 많은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이 상품은 수지를 맞추기 위해 기본수익률을 주는 대신 수익률 상단은 크게 낮췄다. 보통 ELS가 20% 이상의 최고수익률을 제시하지만 이 상품은 아무리 주가가 환상적으로 움직여도 연 10.4%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없게 돼 있다. 그래도 요즘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4∼5% 수준인 걸 감안하면 투자자들은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투자증권이 지난주에 같은 구조의 상품을 팔았을 때 260억 원가량의 자금이 들어왔다. 처음 내놓았을 때 상품의 인기가 뜻밖에 좋아 이번에 다시 판매한 것이다. 이 증권사 상품지원부 하철규 차장은 “사내 트레이딩팀에서 자체 헤지 거래를 하기 때문에 밑지지는 않지만 ‘노(No) 마진 상품’에 가깝다”고 말했다.

메리츠증권이 최근 판매한 ‘ELS 239회’도 같은 구조의 상품이다. 이 상품은 만기가 1년 반으로 다소 긴 대신 기본수익률이 4.5%로 높은 편이다.

○ 만기된 은행예금 유치 경쟁

2000년대 초반 국내 시장에 처음 등장한 ELS는 2005년 연간 발행액이 10조 원에 육박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ELS는 높은 기대수익률만큼 원금 손실 위험도 상당한 상품이 대세였다. 특히 증시 대세상승기에 나왔던 상당수의 ‘하락형 ELS(주가가 하락해야 수익을 내는 구조)’는 수익률이 ―70% 밑으로까지 곤두박질쳐 투자자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다.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엔 무슨 일이 있어도 투자원금만은 지켜주는 원금보장형 상품이 인기를 끌었다. 주가 하락과 펀드 손실을 겪은 투자자들이 안전한 투자를 지향하게 된 게 이유였다. 기본수익률을 보장하는 ELS는 이보다도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증권사들이 이처럼 마진이 거의 없는 ELS를 출시하는 배경에는 은행과의 자금유치 경쟁도 한몫했다. 지난해 말 금융위기로 원화유동성이 악화된 시중은행들은 연 7∼8% 이자를 주는 고금리 특판 예금을 대거 팔았다. 이 상품들의 만기가 돌아오면서 금융회사 간에 이 자금을 잡으려는 경쟁이 격화된 것이다. 4분기에 만기가 되는 은행 정기예금은 약 100조 원 규모로 추산된다.

한 증권사 상품개발 담당자는 “ELS가 비록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이익이 안 되지만 고객이 일단 계좌를 만들면 주식거래, 자산관리계좌(CMA) 등으로 자금이 추가 유입될 수 있어 증권사마다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동양종금증권 이중호 연구원은 “만기가 된 투자자금이 있는 기관투자가들이 다시 은행예금으로 가려니 금리가 이전만큼 만족스럽지 않아 ELS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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