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짜리 새 휴대전화가 5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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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19일 16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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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지를 뜯어 잠시 개통만 시킨 뒤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가 3~5개월 후 중고로 판매하는 이른바 '가개통폰' 시장이 커지고 있다.

가개통폰은 개통을 하기 위해 포장만 잠시 뜯었을 뿐 신제품이나 다름이 없지만 일단 포장을 뜯었기 때문에 중고품으로 분류된다.

값이 신 제품의 반 값 수준이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 '새 것이나 다름없다'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빠르게 수요가 늘고 있는 것.

가개통폰 판매자는 대부분 일선 이동통신 대리점들이다.

과거에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주요 판매자들이었다. 이들은 보조금이 지급되는 '공짜폰'을 여러 대 사서 신규가입한 뒤 의무 사용기간인 3개월 동안 제품을 묵히고 가입비와 3개월 사용료보다 조금 비싼 값에 내다 팔아 용돈을 벌었다.

이에 반해 최근 대리점들은 용돈 벌이 수준을 뛰어넘어 가개통폰 판매로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주로 '가개통폰'으로 판매하는 제품은 이동통신 업체들이 연간 몇 차례씩 특정 모델을 자사 비용으로 구입해 대리점들에 싸게 공급하는 이른바 '보조금 지급' 모델들.

대리점들은 이 제품들을 대량 구입한 뒤 직원이나 친척 등 다른 사람 명의로 개통시켜 놓고 가입비와 사용료를 내며 3개월을 보낸다. 4개월째 들어 가입 해지한 뒤 인터넷장터나 휴대전화 동호회 등에 '가개통폰'임을 알리고 '제품 구입가+가입비+3개월치 사용료'에 더해 일부 마진을 남겨 판매하고 있다.

이들 제품의 주 고객은 통신사나 요금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기만 변경하려는 고객들.

지금은 사라진 커플 무제한 무료 요금제 때문에 가개통폰으로 기기를 새로 구입한 김 모 씨(36·여).

김씨는 최신 터치폰을 갖고 싶어 새 제품을 알아보다가 기계값만 90만원이 넘는다는 얘기를 듣고 같은 모델의 가개통폰을 45만원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신규가입이나 번호이동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는 사용자도 가개통폰 주요 고객이다.

직장인 박모씨(42·여)는 "휴대전화는 새 모델이 나오는 주기가 짧아 2년 약정을 하고 번호이동을 한 뒤 1년쯤 지나면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며 "2년 동안 나눠 내는 단말기 할부금 등을 고려하면 중고 가개통폰이 싼 것 같아 지난해부터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개통폰 수요 증가로 이통사들은 일시적으로 가입자 수가 증가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이를 대량으로 유통시키는 대리점들은 상당액의 부수입을 챙길 수 있으며, 소비자들도 저렴한 값에 새 기기를 수시로 사용할 수 있어 일견 장점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가개통폰은 자칫 잘못하면 시장을 크게 교란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휴대전화 가개통폰으로 증가하는 이동통신사 가입자는 알고 보면 허수(虛數).

또 가개통폰이라는 사실을 알고 제품을 구입했더라도 가개통 기간만큼 제품 보증 기간이 짧기 때문에 소비자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 이동통신 업체 관계자는 "일부 대리점에서는 포장을 뜯어 놓고 마치 안 뜯은 제품인 것처럼 보증 스티커를 새로 만들어 붙여 가개통 중고폰을 신제품으로 속여 파는 경우도 있다"며 "가개통폰 시장이 커질수록 휴대전화 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어 가개통폰 유통에 대한 단속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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