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 미적거리면 대출 회수”

  • 입력 2009년 9월 28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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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성과 부진에 채권단 - 기업 압박
경기 회복세에 기업은 버티고 은행도 느슨

최근 경기회복 분위기에 따라 기업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되자 금융당국이 “기존 대출을 회수하거나 신규 대출을 중단토록 하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며 채권단과 기업을 압박하고 나섰다. 당국은 작년 말부터 1년 가까이 추진해 온 기업 구조조정이 실패하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상당기간이 흐른 뒤 대우그룹 계열사가 줄줄이 도산하면서 금융회사들도 도미노 식으로 무너진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부진한 구조조정에 속 타는 정부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최근 본보 기자와 만나 “은행들이 주식매각 차익 같은 일시적 요인 덕에 실적이 좋아지자 구조조정을 소홀히 하는 데다 기업들도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재무구조 개선에 소극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당국의 다른 관계자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대출 만기연장을 거부하거나 신규 대출을 승인해주지 않는 방안 등을 은행과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압박용 카드를 꺼내든 것은 △업종 △대기업그룹 △개별 대기업 △개별 중소기업의 4대 분야 구조조정에서 인수합병(M&A)이나 대형 자산 매각 같은 인상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의 경기부진으로 직격탄을 맞은 건설사와 조선사, 해운사 등 3개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은 금융당국 내에 설치된 기업재무구조개선지원단이 공을 많이 들인 분야지만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부실징후기업을 뜻하는 C등급을 받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대상으로 분류된 삼능건설과 퇴출 대상인 D등급으로 분류된 대주건설은 몇 개월째 구체적인 처리방안을 정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C&중공업과 녹봉조선, 진세조선 등 조선업체는 채권단이 선박 선수금 환급보증 처리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다 워크아웃에 실패했다.

김종창 금융감독원 원장이 23일 시중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은행들은 단기이익에 집착하지 말고 산업이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구조조정에 힘써 달라”고 당부한 것도 지금 상태로는 만족스러운 결실을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 대우건설 매각 여부에 촉각

금융당국이 최근 가장 신경을 쓰는 현안은 대우건설 매각이다. 이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2006년 말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2009년 말 기준 주가가 주당 3만1500원에 미치지 못하면 주식을 되사주도록 한 풋백옵션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대우건설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주간사회사인 노무라증권은 29일까지 대우건설 지분 매각을 위한 인수의향서(LOI)를 받기로 했지만 일부 외국계 기업과 사모펀드만이 관심을 가질 뿐 국내 대기업은 적극적인 인수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그룹은 금호생명 매각도 지지부진한 상태여서 대우건설 매각이 연내에 성사되지 않으면 구조조정 계획을 원점에서 다시 짜야 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 구조조정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져 구조조정 작업이 전체적으로 표류할 수 있다.

동부그룹도 계열사인 동부메탈 매각에 차질을 빚고 있다. 동부메탈 인수를 추진 중인 산업은행과의 협상이 중단된 상태다. 양측이 원하는 매매가격의 격차가 3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당국의 강경한 자세와 달리 기업들은 달라진 경기상황에 맞는 유연한 기업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한 임원은 “기업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헐값에 계열사나 자산을 팔아 손해볼 수는 없다”며 “달라진 경기상황에 맞춰 구조조정 계획을 새로 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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