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집값 美-英수준 추월… DTI 규제로는 역부족”

  • 입력 2009년 9월 19일 03시 03분


코멘트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비공개로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는 한국의 수도권 집값이 버블이 붕괴된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으로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불안 요인인 만큼 현 수준보다 훨씬 강도 높은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통화당국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이를 위한 정책 대안으로 이 보고서는 ‘통화정책 등 거시정책수단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집값 상승으로 촉발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를 잡기 위해 금리인상 등 ‘출구전략(Exit Strategy)’의 실행 필요성을 강하게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이 최근 잇달아 내비치고 있는 출구전략 실행 의지는 정부의 ‘출구전략 시기상조론’과 정면으로 배치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치열한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가계부채 증가와 주택가격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는 점을 여러 대목에서 강조했다. 수도권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주택가격 배율 지수 및 실질 주택가격은 버블 붕괴를 경험했던 미국 영국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분석했다. 한은은 특히 미국 등 선진국은 금융위기 이후 주택담보대출이 줄면서 가계부채 조정(디레버리징)이 일어난 반면 한국은 가계부채가 계속 늘고 있는 데 주목한다. 6월 말 현재 한국 가계의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44.8%로 일본(23.5%)의 2배 수준이며 글로벌 위기 근원지인 미국(35.2%)보다도 훨씬 높다.

문제는 앞으로도 가격 상승 압력이 높다는 점이다.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나는 데다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심리가 폭넓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택가격 매수세지수는 9월 들어 100을 넘어섰는데, 이는 사려는 사람이 팔려는 사람보다 많다는 뜻이다.

한은은 금융당국이 시행 중인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및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의 효과도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를 막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려면 활용 가능한 경제정책 수단을 동시에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은이 보고서에서 기준금리 인상과 출구전략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이는 연내 금리 인상 의지로 해석된다.

한은 안팎에서는 이르면 11월 한은이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성태 총재의 임기가 6개월밖에 남지 않은 데다 명절(10월, 내년 2월)과 연말 연초에는 아무래도 금리인상 카드를 빼들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한은의 고위 관계자는 18일 “앞으로 부동산 시장 불안이 계속되면 (금리인상에 거부감을 보이는) 정부의 태도도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경기회복세가 확연해질 때까지 출구전략을 시행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거듭 밝히고 있어 정부와 한은 간 신경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