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캐리 시대 가고 달러캐리 시대로

  • 입력 2009년 8월 28일 02시 59분


美 달러 금리, 16년 만에 日 엔 금리보다 낮아져
‘헐값’에 빌려 해외 고금리 자산 투자 늘어날 듯

‘이제는 엔(yen) 아닌 달러(dollar) 캐리 트레이드의 시대.’

‘엔 캐리 트레이드’는 지난해까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자주 언급되던 용어 중 하나였다. 장기 경기침체로 일본 정부가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면서 투자자들이 싼값에 엔화를 빌려 이를 유로나 달러로 된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사례가 잇따랐던 것.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이 투자금을 다시 빼내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여파가 국제 외환시장을 뒤흔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엔화가 아니라 달러화로 이런 차익을 노리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7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달러 리보(런던 은행 간 금리)는 0.37188%로 엔 리보(0.38813%) 밑으로 떨어졌다. 달러 리보가 엔 리보보다 낮아진 것은 1993년 5월 이후 16년 만이다. 달러 리보는 금융위기가 극심했던 지난해 10월 4.81875%까지 치솟기도 했으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전격 인하하면서 하락세를 유지해 왔다.

FRB는 지난해 말 연방기금 금리를 사실상 ‘제로 금리’까지 떨어뜨린 데 이어 장기국채 매입 등을 통한 ‘양적 완화정책’으로 시중에 막대한 달러를 풀었다. 이런 파격적인 유동성 공급 정책은 자금시장의 신용경색을 해소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엔 달러 리보의 역전은 달러 유동성 및 미국 정부의 통화운용 정책에 대한 시장의 안도감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값이 싸진 달러를 이용한 ‘달러 캐리 트레이드’는 달러 약세를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시중에 달러가 넘치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신뢰가 형성된 데다 유로나 호주달러로 된 고금리 자산 투자가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달러화 자산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 최근 글로벌 경기회복 조짐이 나오면서 달러는 피난처로서의 ‘안전자산’ 매력도 줄어든 상태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의 데이비드 와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10년 11월 의회선거까지는 FRB가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라는 정치적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며 “달러가 강세로 돌아설 이유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기조가 달러를 ‘차입통화’로 하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 정부가 미국 정부보다 더 늦게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달러 리보는 다시 엔 리보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논리다. 게다가 최근 발표된 미국의 7월 신규 주택판매가 예상치를 크게 웃돌면서 외환시장에서 달러는 강세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현재 달러당 94엔 수준인 환율도 연말에는 101엔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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