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에 덴 고객들 ‘직접투자’ U턴

  • 입력 2009년 8월 28일 02시 59분


금융위기 마음고생 심했던 고령층일수록 펀드 불신
최근 23일간 1조7000억 환매… 증시 불안정성 커져

■ 본보 투자자 설문조사

“앞으로는 펀드 대신 직접투자만 할래요.”

최근 주식형 펀드의 자금유출 현상이 심각하다.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주가 폭락으로 속앓이를 했던 투자자들이 주가가 뜨면서 자금을 빼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자금유출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동아일보 증권팀이 최근 삼성증권, 대신증권, 동양종금증권이 주최한 투자설명회에 참가한 투자자 1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사람(45.6%)이 “앞으로 직접투자만 하겠다”고 답했다.

간접투자, 특히 적립식 펀드는 2006년 이후 한국 증시를 떠받쳐 온 힘이었다. 하지만 주가 급락을 겪은 뒤 투자자들이 펀드를 등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 적립식 펀드가 자리 잡지 못하면 한국 증시의 불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고령층일수록 펀드시장 불신 높아

금융위기는 고령층에서 펀드시장에 대한 불신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20, 30대의 경우 ‘직접투자와 간접투자를 병행하겠다’는 응답자가 68.8%로 직접투자만 하겠다는 응답자(6.3%)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40, 50대는 직접투자 또는 간접투자를 하겠다는 응답자가 절반씩이었다. 60대 이상에서는 직접투자만 하겠다는 응답자가 62.1%나 된 반면 두 가지 투자를 병행하겠다는 응답자는 31.0%였다. 전체 연령대에서 직접투자만 하겠다는 응답자의 55.0%가 펀드투자로 손실을 본 사람들이었다.

펀드가 손실이 났을 때 대응방식도 연령대별로 달랐다. 20, 30대는 63.6%가 ‘오래 투자하려고 가입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고 장기 보유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40, 50대는 절반(50.0%)이 ‘찾고 싶었지만 손실이 커서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60대 이상은 29.4%가 ‘손실이 커서 찾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만일 금융위기가 다시 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20, 30대의 70.6%는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 투자하겠다’고 응답했다. 40, 50대는 61.5%, 60대 이상은 47.8%가 ‘일시에 회수해 현금으로 갖고 있겠다’고 답했다.

동양종금증권 자산관리컨설팅연구소 우재룡 소장은 “많은 투자자가 자산을 투자 목적과 기간에 맞게 분산 투자한 게 아니라 당시 유행이었던 펀드에 몰아넣었기 때문에 한번 ‘데고’ 난 뒤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자산배분 전략을 먼저 짜야

주식형 펀드에서 유출되는 자금 규모는 주가지수가 오르면서 더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4일 코스피가 31.24포인트(1.98%) 오르면서 13개월 만에 1,600대에 올라선 다음 날 주식형펀드에서는 2420억 원이 순유출됐다. 7월 31일, 8월 14일 등 주가가 1% 넘게 급등한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1000억 원이 넘는 돈이 빠져나갔다. 지난달 16일 이후 23일 연속 주식형 펀드에서 유출된 자금의 규모는 1조7097억 원이었다.

현대증권 WM컨설팅센터 오성진 센터장은 “2006년부터 붐이 일기 시작한 펀드는 전체 자금 가운데 54% 정도가 코스피 1,600 이상에서 유입됐다”며 “이들의 평균수익률이 현재 13%이므로 수익실현 욕구가 생기는 데다 가입한 지 3년 정도 지나면서 ‘할 만큼 했다’는 분위기도 있어 환매압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보니 최근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가의 역할은 미미하다. 최근 2개월(42거래일) 동안 기관은 총 6조 원이 넘는 자금을 순매도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들의 ‘바이 코리아’ 행진으로 지수는 190.43포인트(13.5%) 올랐다.

2006년에는 한 달에 1조 원 내외의 자금이 펀드에 순유입되는 때가 많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내다팔아도 기관이 떠받쳐 지수가 오르는 날이 잦았다. ‘한국 증시가 외국인의 영향으로부터 독립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덕분에 코스피는 2007년 말 2,000을 뚫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적립식 펀드의 환매규모가 커지고 외국인의 매수행진이 멈춘다면 증시의 불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동양종금 우 소장은 “미국에서는 노후대비 차원에서 펀드를 예금처럼 장기 보유하고 자신의 자금계획에 따라 찾아 쓴다”며 “미국식 펀드 투자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국 증시의 불안정성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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