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 M&A실패로 형제갈등 시작

  • 입력 2009년 7월 29일 02시 59분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시아나그룹 본관에서 박삼구 그룹 회장이 자신과 동생인 박찬구 화학부문 회장의 동반 퇴진 사실을 알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시아나그룹 본관에서 박삼구 그룹 회장이 자신과 동생인 박찬구 화학부문 회장의 동반 퇴진 사실을 알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 찬구 회장 동반퇴진 파장

금호석유화학 지분놓고 충돌
법정공방 등 분쟁불씨 남아
자산매각-구조조정 차질 우려
당국 “대우건설 계획대로 판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 형제의 동반 퇴진에 대해 경제계에서는 “안타깝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박성용 2대 회장, 박정구 3대 회장, 박삼구 4대 회장으로 이어져 내려온 ‘형제 경영’의 전통이 ‘아름답지 않게’ 막을 내리게 됐기 때문이다. 경제계에서는 대우건설 인수합병(M&A)과 실패를 둘러싼 두 형제의 이견이 파국을 부른 것으로 보고 있다.

○ “부끄러운 형제관계 죄송”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이 1984년 세상을 떠난 뒤 고 박성용, 고 박정구, 박삼구, 박찬구 4형제는 지분을 똑같이 나눠 가졌다. 형제들은 만 65세가 되면 형제 간 경영권을 물려준다는 ‘65세 룰’을 만들어 재계의 모범적인 가족경영 사례로 칭송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형제 경영’의 마지막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대우건설 재매각 결정 이후 좀처럼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박삼구 회장은 28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그룹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금호석유화학 이사회에서 동생을 해임했는데 어떻게 제가 회장직에 남아있겠냐”며 “이런 유감스러운 상황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고 밝혔다. 또 그는 “부끄러운 형제관계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 대우건설 M&A 실패가 도화선

두 형제가 갈라서게 된 것은 대우건설 인수가 결정적이었다. 금호아시아나는 2006년 건설업계 1위인 대우건설을, 이듬해에는 물류업계 1위인 대한통운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물류·운송 △제조 △건설 부문으로 이어지는 그룹의 3대 핵심사업 구축에 성공했다. 기업 M&A에 대한 박삼구 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금호아시아나는 재계 순위 11위에서 8위(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로 껑충 뛰어올랐다.

하지만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을 6조4000억 원에 인수하면서 신한은행 등 17개 금융회사에서 3조 원을 빌리는 대신 올해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1500원을 밑돌면 이 가격에 주식을 되사주겠다는 ‘풋백 옵션’을 약속했다. 하지만 올 들어 대우건설 주가는 1만 원대로 주저앉으면서 풋백 옵션에 따른 자금 부담이 경영 전반에 걸림돌로 불거졌다. 증권가에 따르면 1만 원대의 현 수준 주가를 고려할 때 향후 풋백 옵션 이행에 따른 추가 자금 부담액은 약 4조 원에 이른다. 지난달 대우건설 매각 선언은 이런 자금사정을 반영한 결정이었다.

대우건설 인수 단계에서부터 “무리한 인수에 따른 후유증이 염려된다”며 반대 의견을 냈던 박찬구 회장은 최근 지분을 늘려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석유화학에 대한 지배력 강화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형제 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박삼구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화학부문 회장은 본인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그룹) 경영에 반하는 행위를 여러 가지 했다”며 동생에 대해 섭섭한 속내를 드러냈다.

박찬구 회장이 박삼구 회장 측의 해임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법정공방 가능성 등 분쟁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박삼구 회장은 “이사회 결의에 의해 이뤄진 만큼 (박찬구 회장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법적 하자가 있으면 누구나 대응할 수 있으며 법적 하자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찬구 회장도 이날 열린 금호석유화학 이사회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 갈 길 먼 구조조정 어떻게 되나

그룹 안팎에서는 두 형제가 법적으로 경영권 분쟁에 들어가면 대우건설을 비롯해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금호생명 등 주요 자산의 매각과 그룹 구조조정에 차질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구조조정이 장기화할수록 유동성 위기에 놓여 있는 금호아시아나의 경영은 더 어려움을 겪게 된다.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박삼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수렴청정’을 하지 않겠냐는 추측도 제기한다. 이와 관련해 박삼구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게 되면 대주주로서 그룹 재무구조 개선약정 이행에 도움을 줄 것”이라면서 “그룹 재무구조 개선에만 역할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금호아시아나의 기업 지배구조 변화에 관계없이 구조조정은 예정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금호아시아나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관계자는 “총수 일가 퇴진이 금호아시아나에 대한 구조조정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현재 실사를 진행 중인 대우건설 매각 등 구조조정은 계획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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