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간판기업들 ‘깜짝 실적’ 왜?

  • 입력 2009년 7월 25일 02시 57분


공격마케팅으로 불황 공략… 세계시장 점유율 높아져
“기초체력 향상 탓” 분석

“달러표시 실적은 줄어”… 일부선 ‘환율 착시’ 주장

한국 간판 제조기업들의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24일 발표했다. 이에 앞서 LG전자도 2분기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원을 돌파했고, 현대자동차는 2분기 당기순이익 사상 최대치를 나타냈다. 6월 말 현재 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TV와 휴대전화는 3대 중 1대가 한국제품이다.

노키아(휴대전화) 인텔(반도체) 소니(TV) 도요타(자동차) 등 해외 주요 기업들의 2분기 실적이 악화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승승장구하는 한국 제조기업들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 환율 효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원-달러 환율은 평균 1285.4원. 지난해 4분기(1362.5원)에 비하면 원화가 강세를 보였는데도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치솟았다.

해답의 실마리는 일본 엔화와 비교하면 찾을 수 있다. 2분기 엔-달러 환율은 97.4엔으로 원화에 비해 여전히 강세를 보였다. 나준호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세계 시장에서 경합 관계인 일본 기업이 엔고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한국 기업은 훨씬 싼 가격으로 해외시장을 파고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의 튼튼한 기초체력도 한몫했다. 김종석 홍익대(경영학) 교수는 “국내 기업들은 일본 기업에 비해 발광다이오드(LED) TV와 40나노급 D램 양산 기술 등을 재빠르게 개발해 시장을 선점했다”고 말했다.

이런 영향으로 한일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확연하게 차이난다. 2분기 영업이익률은 △LG전자(7.6%)가 소니(―1.5%)보다 △현대자동차(8.1%)가 도요타(―7.9%)보다 △포스코(2.7%)가 신닛테쓰(0%)보다 크게 높았다.

반면 실적 일부에는 환율에 따른 ‘착시현상’이 포함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원화 표시 실적이 최대치여도 이를 달러화로 표시하면 실적이 축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LG전자의 가전 부문인 홈어플라이언스(HA)사업본부는 원화 표시 매출은 10% 늘었지만 달러 기준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14% 줄었다.

○ 불황에 오히려 마케팅 비용 늘려

기업들은 불황기에 대개 마케팅 비용 등을 깎아 이익을 낸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2분기 마케팅 비용은 본사 기준으로 1조3454억 원으로 경제 위기 직전인 지난해 같은 기간(1조397억 원)보다도 많았다. 현대차도 올해 상반기 전체 매출액 중 해외 시장 개척비의 비율이 3.6%로 지난해 같은 기간(1.8%)의 두 배나 됐다. 해외 주요 경쟁업체들이 불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서 만들어진 ‘시장 공백’을 국내 기업이 효과적으로 파고든 셈이다. 국내 기업들은 시장점유율 확대에 필요한 마케팅 비용은 쓰면서도 소모성 경비에 대해서는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맸다.

‘중국 효과’도 한국 기업의 실적 호전에 힘을 보탰다. ‘가전하향(家電下鄕·농촌에서 가전 구매 시 보조금 지원)’ 등 중국의 내수 부양책이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제품의 판매 확대로 이어졌다. 또 1600cc 이하 소형차를 살 때 구입세의 절반을 깎아 주는 중국의 소형차 확대 정책 덕분에 현대차는 ‘웨둥(悅動·중국형 아반떼)’의 판매를 늘릴 수 있었다.

○ 깜짝 실적 이어질까?

3분기 이후에도 깜짝 실적이 이어질지가 관심사다. 경제 전문가들은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이르다고 지적한다. 송재용 서울대(경영학) 교수는 “한국 기업이 튼튼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무역수지 흑자로 한국 기업을 떠받쳤던 엔화 대비 원화 가치 하락이 더는 이어지기 힘들어 한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하반기는 성수기로 글로벌 기업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마케팅 비용이 늘어나고, 내년 이후 세계 경기가 본격 회복되면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몸을 가볍게 한 미국 일본 기업들이 한국을 치고 올라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기업들의 시각도 아직은 조심스럽다. 삼성전자는 3분기에는 “부품 사업 원가 경쟁력 등으로 긍정적 요인이 많다”면서도 “4분기는 아직 전망이 불투명하고 낙관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LG전자도 “3분기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 늘어날 것”이라면서도 “3분기 실적을 섣부르게 낙관하기에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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