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효자협력사’ 아십니까

  • 입력 2009년 6월 19일 02시 56분


거성, 반도체 핵심부품 이온소스헤드 국산화

엘오티베큠, 소비전력 낮춘 진공펌프 납품

삼성전자의 반도체부문 경쟁력은 불황에서도 돋보인다. 1분기(1∼3월) 영업적자가 6700억 원으로 영업이익률이 ―13%를 나타냈지만 다른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에 비하면 ‘훌륭한’ 성적표다. 일본 엘피다는 영업이익률이 ―106%, 미국 마이크론은 ―71%, 대만 난야는 ―135%였다. 경쟁업체들을 압도하는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탄탄한 협력업체다. 특히 과거 독일이나 일본이 독점 생산하다시피 한 반도체 장비들을 잇달아 국산화한 일부 협력업체들은 삼성 반도체의 오늘을 만든 숨은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거성과 엘오티베큠이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전 직원 개발인력화로 국산화

지난해 11월 충남 아산시 음봉면에 위치한 거성 본사는 환호에 휩싸였다. 임직원 55명은 서로 얼싸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반도체 제조용 이온주입장비의 핵심부품인 ‘이온소스헤드’를 납품한 삼성전자에서 최종합격 통보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배리언이 시장의 90%를 독점하고 있는 이온소스헤드 부문에서 첫 국산화가 이뤄졌다는 의미였다. 개발 착수 1년 만이었다. 거성 반도체사업 본부장인 박현진 상무는 “그 기다림의 마음은 아마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라고 회고했다.

설립 15년째에 접어든 거성은 임직원이 55명에 불과한 작은 중소기업. 거성의 슬로건은 “전 직원의 개발인력화, 전 직원의 영업인력화”다. 이른바 멀티 플레이어 전략인 셈. 이온소스헤드 국산화 성공으로 자체 기술 개발에 자신감을 얻은 덕분에 지난해 매출액(120억 원) 대비 5% 정도였던 연구개발(R&D)비를 올해는 10%까지 높이기로 했다.

거성은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라인의 국산화에도 첫걸음을 내디뎠다.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2.2m, 2.5m인 초대형 트레이(LCD 유리기판을 이동시킬 때 안정적으로 잡아주는 거치대)를 국내에서 처음 개발해 삼성 탕정라인(8세대)에 12세트를 납품한 것. 트레이는 간단한 장비처럼 보이지만 가벼우면서도 변형이나 깨짐이 없어야 하고, 유리기판 위치의 오차가 허용되지 않아 꽤나 까다로운 제품이다.

아낌없는 R&D로 ‘청출어람’

정밀 진공펌프 제조업체인 엘오티베큠은 지난해 ‘1000만 달러 수출의 탑’을 받았다. 수출액 중 절반은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의 삼성 반도체공장에 판매한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150년 전통의 독일 올리콘라이볼트베큠에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납품한 것이다. 2002년 라이볼트베큠으로부터 진공펌프 사업부를 인수해 출범한 이 회사는 이듬해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공장의 생산 장비를 경기 안성시의 한국 공장으로 가져와 사업을 본격화했다.

엘오티베큠은 독자기술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비를 아끼지 않았다. 2005∼2007년 3년간 낸 당기순이익 143억 원의 44%인 62억 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했을 정도. 그 결과 2007년 7월 모(母) 회사인 라이볼트베큠에 제품 역수출 계약을 하는 결실을 맺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엘오티베큠의 건식진공펌프는 소비전력이 기존 제품의 절반밖에 되지 않고 크기도 30% 작다”면서 “수입품을 쓸 때에 비해 장비 설치비와 운용비를 한꺼번에 절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경쟁력은 대기업 하나가 잘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협력사들의 기술 수준이 함께 업그레이드 돼야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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