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이 진다? 아직은 패션1호점!

  • 입력 2009년 6월 11일 02시 55분


“브랜드 이미지에 도움”

상권 위상 낮아졌지만 업체들 매장 신설-유지

1988년 봄, 미국에서 잘나간다는 햄버거 체인 ‘맥도날드’가 서울에 상륙했다. 장소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당시 평범한 아파트촌이던 이곳에 맥도날드 1호점이 들어서면서 ‘핫 스폿(hot spot)’으로서의 압구정동 역사는 시작됐다. 압구정동은 호불호를 떠나 20년 넘게 관심을 받아온 ‘애증의 공간’이었다. 그러던 압구정동이 식었다. 2000년대 중반 들어 도산공원이나 가로수길 등에 밀리기 시작하더니 최근엔 아예 청담동과 신사동에 패권을 뺏겼다는 말도 나온다.

자리 지키는 패션업체들

그럼에도 국내외 패션업체들은 압구정동을 떠나기는커녕 땅값도 비싼 이곳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 국내 대표 패션 업체인 제일모직은 1년 전부터 편집 매장 ‘10꼬르소꼬모’를 운영 중이다. 여기에 LG패션도 가세해 4일 압구정로 230에 첫 번째 여성복 편집매장인 ‘LG패션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왜일까. 9일 찾은 이 매장에선 TNGT나 닥스 등 남성 정장으로 대표되던 종전 LG패션 특유의 이미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질스튜어트, 모그, 블루마린 등 살구색과 민트색 등 사랑스러운 색상과 소재의 여성복들이 가득한 매장을 둘러보다 보니 ‘LG패션에서 운영하는 곳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회사가 압구정동 금싸라기 땅에 굳이 매장을 연 이유는 남성복 색깔이 강했던 기존 브랜드 아이덴티티에서 탈피해 여성복 강자(强者)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자 한 것. 김동억 LG패션 홍보팀 대리는 “건물 용도를 두고 고민하다 브랜드 이미지 개선을 위한 공간으로 쓰기로 했다”며 “압구정동은 그 이름 자체에 브랜드 가치가 담겨있어 최적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미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10꼬르소꼬모 역시 압구정동이란 이름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김재성 제일모직 10꼬르소꼬모 담당 과장은 “사실 압구정동이 이전처럼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아닌 게 맞다”면서도 “파리 ‘몽테뉴가’나 뉴욕 ‘5번가’처럼 전통과 역사가 있는 상징적 공간으로 정착해 가는 과정이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왜 압구정동인가

명품 편집숍만이 압구정동의 전부는 아니다. 푸마나 아디다스 등 스포츠웨어 브랜드부터 저가 화장품 및 의류 매장들도 압구정동에 남아 있다. 지난달 기존 플래그십 매장을 맞은편으로 확장 이전한 MLB는 압구정 매장만 유일하게 본사에서 직영한다. 신규 화장품 브랜드인 네이처 리퍼블릭 역시 명동에 이어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 매장을 냈다. 이렇게 압구정동에 모이는 이유에 대해 업체들은 “1호점이 압구정동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브랜드의 위상이나 이미지는 한층 업그레이드된다”고 입을 모은다. 업체들에 압구정동 ‘입성’은 브랜드가 얼마나 잘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인 셈이다. 푸마 관계자는 “압구정동은 명동이나 코엑스처럼 유동인구가 많지 않지만 유행을 전파하는 패션리더들이 찾는 지역이다 보니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매장은 철저히 운영한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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