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시장장벽 높다한들…현해탄 건너는 한국 휴대전화

  • 입력 2009년 5월 19일 20시 25분


'세계 2위, 북미 1위, 연간 2억 대 판매', '세계 3위, 북미 3위, 연간 1억 대 판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지난해에 거둔 휴대전화 사업 성적표다. 세계 '톱 5'에 속하는 미국 모토로라와 일본-스웨덴 합작업체인 소니에릭슨이 차례로 위기에 빠지면서 한국 휴대전화는 세계시장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한국 휴대전화가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곳이 있다면 바로 일본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이동통신사들의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여간 힘들뿐 아니라, 품질로 무장한 일본 휴대전화 제조사들을 넘어서는 것도 만만찮은 과제였다. 그러나 일본은 연간 휴대전화 판매량이 5000만 대 안팎에 이르는 대형 시장. 한국 휴대전화업체들이 일본 시장의 높은 벽을 허물기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는 이유다.

●일본 시장의 높은 장벽

일본이 '글로벌 휴대전화 업체들의 무덤'으로까지 불리는 첫 번째 이유는 이동통신사에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이동통신사들도 까다롭기로 유명하지만, 일본에 비하면 허술한 편이라는 것이 휴대전화 업계의 공통된 전언이다. 팬택이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2위 이동통신사업자 KDDI의 경우 제품의 기능과 기준 등을 요구하는 '제품 사양서'가 모두 7만여 쪽(500쪽 안팎의 책 140권)에 이른다. 시제품을 만든 뒤 품질테스트를 위한 기준을 총 망라한 '품질확인 요령서'도 140쪽 분량의 책이 무려 58권이나 된다.

팬택은 2005년 11월 일본에서 첫 휴대전화 'A1405PT'를 내놓기까지 디자인리뷰만 7차례, 공장 품질검사만 4차례를 받아야 했다. 일본 이동통신사들은 포장 단계까지도 지나치리만큼 꼼꼼함을 요구한다. 바코드 부착 위치는 물론 부속물들이 동일한 방향, 동일한 순서로 들어가야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 정도다.

두 번째로는 일본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의 기술수준이 한국보다 '한수 위'라는 점. 지난해 일본 휴대전화 시장은 △샤프 23.2% △파나소닉 16.3% △NEC 13.0% △후지쓰 10.5% △도시바 9.0%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본부 한 임원도 "일본 휴대전화가 세계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한국 제품보다 절대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까다로운 일본시장의 특성 때문에 심지어 세계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는 1위 휴대전화 제조사인 핀란드 노키아도 지난해 일본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에 비하면 한국 업체들은 그런대로 '선전(善戰)'하는 편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도전

한국 휴대전화 업체 중 일본에 가장 먼저 진출한 곳은 팬택이다. 2005년 11월 첫발을 내디딘 이후 올 2월까지 6가지 모델을 내놨다. 지난해 10월에야 누적공급 200만 대를 넘어서는 등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가장 적극적이다. 특히 지난해 9월부터 판매한 '팬택-auW62PT'의 경우 이달 들어 매일 2000여대씩이 개통되면서 KDDI 판매순위 상위권을 점하는 등 분위기도 괜찮다. 팬택 한 연구원은 "일본에 판매할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모든 스케줄을 한 치 오차도 없이 지켜야 한다"며 "팬택은 4년간 신뢰를 쌓아온 만큼 앞으로 사업 확대 기회가 크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2006년 초에 일본에 눈을 돌린 뒤 3년 만인 올 2월 누적판매 100만 대를 갓 넘긴 LG전자는 올 한해 목표를 100만 대로 잡았다. '글로벌 메가 히트' 제품인 초콜릿폰과 샤인폰, 프라다폰 등이 일본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주목받으면서 사업에 자신감을 얻게 됐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의 경우는 일본 시장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은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를 일본 전자업체들에 많이 팔고 있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가지고 정면승부를 벌이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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