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요금체계 베껴…이통사 또 진흙탕 싸움

  • 입력 2009년 5월 10일 18시 37분


이동통신업계에 다시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정체된 이동통신시장에서 서로 경쟁사 가입자 뺏기에 열중하다 보니 상대방의 요금체계를 그대로 베끼다시피 하는 일까지 생긴다. 일각에서는 3사를 합쳐 마케팅비용만 1조7000억 원을 쏟아 부었던 지난해 2분기(4~6월)의 과열양상이 1년 만에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온다.

LG텔레콤은 11일부터 세이브(Save) 일반, 표준, 삼분 등 3가지 요금제를 판매한다. SK텔레콤의 T일반, 표준, 삼삼 요금제와 동일한 체계다. 기본료 및 10초당 통화료, 할인적용 시간이 모두 같다. 이름마저 비슷하다. 이동통신 3사의 요금제를 모두 합치면 모두 200가지가 넘지만 이처럼 상대방의 요금체계를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LG텔레콤 측은 "SK텔레콤 가입자가 LG텔레콤으로 번호이동을 할 때 기존 요금제를 쓸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SK텔레콤 가입자 중 일반, 표준, 삼삼 요금제를 사용하는 비중은 전체의 약 43%. LG텔레콤은 특히 5만 원 초과, 7만5000원 미만 사용액을 무료로 해 줌으로써 SK텔레콤의 인기상품 가입자를 특정 타깃으로 삼은 셈이다.

업계에서는 LG텔레콤의 새 요금제는 SK텔레콤의 보조금 차별 정책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이 짙다고 보고 있다. LG텔레콤은 2월 말 "SK텔레콤이 LG텔레콤 가입자에게만 번호이동 보조금을 더 많이 주고 있다"며 방송통신위원회에 '보조금 차별 지급행위 금지에 대한 신고서'를 제출했다. KTF가입자가 SK텔레콤으로 옮길 때 보조금을 20만 원을 줬다면 LG텔레콤 가입자가 SKT로 옮길 때는 30만 원을 줘 자사(自社) 가입자를 더 많이 빼가려 했다는 주장이다. 방통위는 최근 이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곧 SK텔레콤에 대한 제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조금 경쟁도 다시 뜨거워졌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34만3267명에 불과했던 이동통신 번호이동자는 지난달 107만328명으로 크게 늘었다. 월간 번호이동자 수가 100만 명을 넘긴 것은 지난해 6월(108만2779명) 이후 10개월 만이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7~12월)부터 KT와의 합병 추진 등을 이유로 마케팅에 소극적이었던 KTF도 최근 가입자 쟁탈전에 본격 가세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마케팅비용 절감에 힘입어 1분기(1~3월)에 비교적 좋은 실적을 내놨던 이동통신사들이 또 다시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관련업계 한 관계자는 "전체 이동통신가입자 수가 이미 4600만 명을 넘어서 더 이상 성장할 여지가 없는데다 데이터서비스 매출도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이 업체간 출혈경쟁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가입자 유치에만 사활을 걸다보니 정작 통신서비스 개선을 위한 기술 개발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창덕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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