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깜짝 실적’ 뒤엔 뼈깎는 긴축 있었다

  • 입력 2009년 4월 27일 02시 58분


■ 삼성-LG전자 KT 선전한 배경 살펴보니

씀씀이 최대한 줄여
환율효과도 무시 못해
군살빼는 해외기업
추격 대비 전략세워야

“한국 기업의 저력인가. 아니면 일시적 착시효과인가.” 삼성전자, LG전자, KT 등 한국 대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연이어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최악의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선전(善戰)한 배경은 뭘까.

해당 기업들은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각종 경비를 최소화한 것이 실적 개선의 ‘1등 공신’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원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일시적 효과에 지나지 않는 만큼 지나친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줄일만한 곳 샅샅이 찾아내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10∼12월) 1조 원에 가까운 영업적자를 냈고, 올 1분기(1∼3월)에는 적자폭이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랐다. 이 회사는 1월 대규모 조직개편을 통해 현직 임원을 130여 명 줄이는 등 허리띠를 최대한 졸라맸다. 씀씀이도 대폭 줄였다. 지난해 4분기 마케팅 비용으로 1조9481억 원을 지출했지만 올 1분기에는 6683억 원밖에 쓰지 않았다. 총매출액 대비 마케팅 비용의 비중은 10.6%에서 3.6%로 급감했다. 이는 불황기 삼성전자의 마케팅 전략이 ‘효율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지난해 최대 실적을 거둔 LG전자는 올해 들어 ‘3조 원 경비절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구매비용은 물론 부서별 미니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면서 경비를 줄일 수 있는 곳을 샅샅이 찾아내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인 남용 부회장은 틈만 나면 임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회사에서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판매관리 비용이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4분기 25.0%에서 올 1분기 17.5%까지 축소됐다.

KT는 통신시장 정체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 이상 늘어난 3845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4분기보다는 3.6배가 늘었다. 영업비용 지출을 직전 분기보다 4034억 원 줄인 것이 결정적이었다. 1월 취임한 이석채 KT 회장은 성장 정체를 보완하기 위해선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내린 뒤 인건비만 1053억 원을 줄였다.

○ 환율 섣부른 낙관론 경계를

다소 진정될 기미를 보이고는 있지만 환율 변동성은 여전히 가장 뜨거운 이슈다. 해외 매출 비중이 90%에 가까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우 환율에 대한 민감도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원화가치는 지난해 말 달러당 1259원에서 3월 말에는 달러당 1377원으로 9% 가까이 떨어졌다. 해외 기업들에 비해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져준 것이 사실이다. 일본과 중국 경쟁사들을 모두 따돌리는 ‘역샌드위치 효과’도 각 부문에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경영자들은 환율 효과로 인한 실적 개선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LG전자는 1분기 매출액이 작년 동기 대비 14.6% 늘어났지만 달러 기준으론 오히려 20% 정도 줄어들었다. 삼성전자도 원화 기준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0.2% 증가했음에도 달러 기준 매출액은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 IR팀장인 이명진 상무는 “분명 시장 예측을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했지만 향후 전망을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엄청난 감원과 사업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개선해 나가는 것도 단기적인 성과에 만족할 수 없는 이유다. 휴대전화 업계 세계 1위인 핀란드 노키아는 최근 들어 압도적인 강력함을 잃긴 했지만 여전히 세계 시장의 37%를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생산량의 17%에 해당하는 외주생산을 중단하는 등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TV 업계에서는 소니와 샤프, 파나소닉 등 일본 업체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사업 구조조정과 감원 등에 나서고 있어 한국 기업들은 ‘엔고 이후’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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