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0개사 부채총액 1년새 25% 급증

  • 입력 2009년 3월 24일 03시 04분


지난해부터 각종 위기설이 터져나올 때마다 정부가 자신 있게 반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근거는 한국 기업들의 빚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기업 부채비율은 외환위기 당시 420%(1997년)나 됐지만 고강도 구조조정 결과 10년 뒤인 2007년 말엔 주요 선진국들보다도 낮은 80%대까지 떨어졌다. 오히려 빚이 너무 적어 투자 부진과 성장잠재력의 후퇴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장기화와 유동성 위기를 걱정한 기업들의 잇단 현금 차입으로 기업 재무구조가 다시 나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빚과 이자비용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업환경 악화로 곳간마저 비어 채무상환 능력도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 심상치 않은 기업 부채 증가

23일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의 집계 결과 지난해 말 현재 삼성전자 포스코 등 시가총액 상위 10개사(금융사 및 공공적 성격이 강한 KT&G 제외)의 부채총액은 121조9000억 원으로 1년 전(96조9000억 원)에 비해 25.8% 늘었다. 상위 100개사의 부채비율은 같은 기간 82%에서 100%로 상승했다.

총차입금에서 현금성 자산을 뺀 순차입금 규모도 1년 전에 비해 두 배로 급증했다. 재계정보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자산총액 기준 10대 그룹 산하 비금융 상장기업의 작년 말 현재 순차입금 총액은 39조3553억 원으로 2007년 말(19조918억 원)에 비해 106.1%나 증가했다.

문제는 올해 상황은 이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기업들의 부채는 크게 은행 차입금과 회사채, 외화채무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회사채 발행분과 외화표시 부채가 올해 초에 크게 늘었다.

회사채 발행액은 올 들어 23일까지 18조6000억 원으로 이미 지난해 1∼3월 수준(11조9000억 원)을 넘어섰다. 올해 초 유난히 심했던 원화가치 하락세도 달러화 또는 엔화 표시 부채의 환산액을 크게 늘렸다. 지난해 말 원-달러 환율(1259.5원)과 23일 종가 환율(1391.6원)을 감안하면 1억 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는 기업은 가만히 앉아서 빚이 약 132억 원 더 늘어난 셈이다.

○ 빚낸 돈으로 투자도 안 해

기업들이 빚을 갚으려면 현금이 들어와야 하는데, 장사해서 남는 돈도 ‘반토막’이 났다. 증권사들이 코스피 상장사 125개사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을 추정한 결과 지난해 1분기에 비해 50.48%나 줄어들 것으로 집계됐다. 순이익도 56.19%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이렇게 빚을 내 마련한 돈으로 신규투자를 하는 것도 아니다. 차입금이나 회사채 발행액의 상당부분은 미래에 있을지 모르는 유동성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금고에 쌓아 두는’ 돈이다.

대신증권 성진경 시장전략팀장은 “경영실적이 안 좋은 상태에서 기존에 설비투자나 M&A를 많이 한 기업이라면 재무제표는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차입금이 늘어난 기업은 이자비용마저 증가하는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우증권 임태근 연구원은 “부채비율이 증가한다는 것은 물론 기업들에는 부정적인 것이지만 차입할 수 있는 여력은 아직 상당폭 남아 있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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