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벼랑에서 날아오른 재래시장

  • 입력 2009년 3월 10일 02시 57분


서울중앙시장, 인근 대형마트 2곳 입점뒤 ‘생존게임’

쇼핑카트-배달 등 서비스 혁신… 불황에도 손님 늘어

“서울중앙시장은 인정과 멋이 어우러지는 멀티형 매장입니다.” 5일 오후 5시경 찾은 서울 중구 황학동 서울중앙시장. 시장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시장운영회가 구수한 입담으로 시장을 홍보하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봄을 알리는 빗속에서도 시장 안은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로 붐볐다. 시장 천장에 비 가리개가 덮여 있어 장을 보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다녀야 하는 여느 재래시장과 달리 쇼핑카트를 끌고 다닐 수 있어 편리했다.

○ 쇼핑카트, 배달 서비스

서울중앙시장은 동대문, 남대문과 함께 서울 3대 재래시장으로 꼽혀 왔다. 1962년 문을 연 이곳은 처음 세워졌을 때만 해도 전국에서 모여든 미곡과 채소를 파는 도매시장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시장에서 불과 500여 m 떨어진 곳에 이마트 청계천점이 들어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에서 1.7km 떨어진 왕십리민자역사에도 이마트가 생겨 시장의 존립 자체가 흔들렸다.

하지만 이곳 상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40년 넘게 함께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팔을 걷어붙였다. 우선 상인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지원센터 상인대학에서 친절 교육과 대형마트의 상품 진열 방법, 판매 노하우를 익혔다.

그 결과 중앙시장은 새롭게 변신했다. 우선 시장 내 조명시설을 확충해 대형마트 못지않게 밝아졌다. 고객이 다니는 통로도 폭이 3m로 넓어졌다. 시장 상인들이 자체적으로 ‘양심선’을 그어 노점 판매대가 통로를 침범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시장 입구에는 대형마트에서 볼 수 있는 쇼핑카트도 비치했다.

류명수 서울중앙시장운영회 관리부장은 “손님이 원하면 장 본 물건을 집까지 배달해 주기도 하는 만큼 대형마트에 비해 불편할 게 없다”고 전했다.

○ 믿을 만하고 값싼 것이 무기

중앙시장은 대형마트 진열대처럼 품목마다 원산지와 단위당 판매 가격을 적어 놓았다. 고객들이 시장을 멀리하는 이유로 불명확한 원산지 표시를 꼽는 사례가 많다고 봤기 때문.

시장에서 만난 주부 김모 씨(35)는 “원산지 표시가 명확하고, 정찰제도 완벽하게 이뤄져 집이 성수동이지만 일부러 버스로 두세 정류장 거리인 이곳에 와서 장을 본다”고 말했다.

대형마트보다 평균 20∼30% 저렴한 가격도 시민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요즘 제철인 딸기 한 상자도 대형마트에서는 5000원이 넘지만 이곳에서 4000원이면 살 수 있다. 밤을 사면 즉석에서 밤을 깎아주는 등 대형마트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서비스도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실제로 불황으로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개사는 지난달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6∼17%의 매출 하락을 보이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서울중앙시장은 상인들의 노력으로 시장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예년보다 10%가량 늘었다.

하지만 중앙시장 상인들은 아직도 대형마트에 비해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주차시설이나 화장실이 없어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중앙시장은 앞으로 인근에 주차공간을 마련해 호텔에서 볼 수 있는 주차대행 서비스를 실시하고, 공중화장실도 설치할 계획이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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