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먹구름 뚫은 ‘NO.1 中企’

  • 입력 2009년 3월 10일 02시 57분


■ ‘세계시장 점유율 1위’ 국내 中企 48개사 설문

집중적 R&D투자 - 틈새시장 공략이 비결…“글로벌 위기 타격없다” 34%나

《세계적 불황에도 잘나가는 중소기업들의 특징과 비결은 무엇일까. 동아일보 산업부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식경제부와 함께 2007년 기준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상품들을 골라냈다. 상품마다 대표기업을 뽑은 뒤 중소기업만 추려낸 결과 68개사가 나왔다. 이 중 설문 및 전화 조사에 응한 48개 기업으로부터 ‘1등의 비결’을 들어봤다. 연구개발(R&D)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 공통됐다. 또 응답 기업 대부분은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수출과 매출액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중소기업인 ‘코텍’은 카지노용 모니터를 만들어 90% 이상을 수출한다. 올해 한국 기업들의 수출이 어려워지자 주위에서 자주 위로의 말을 건넨다.

하지만 정작 코텍 직원들은 웃고 있다. 올해 수출과 매출액이 모두 30% 이상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에도 성장하는 비결에 대해 코텍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의 영향력을 꼽았다.

1987년 창립 때부터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TV나 컴퓨터용 모니터를 피해 게임용 모니터만 고집했다. 이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1999년 세계적인 게임 회사인 미국 IGT가 코텍을 파트너로 선택했다. 이후 급성장해 거래처가 세계 70여 개 나라로 늘었다.

현재 코텍은 카지노용 모니터 분야에서 약 50%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보이는 ‘절대 강자’다. 거래처가 꾸준히 늘면서 개별 거래처의 주문량이 줄어도 전체 매출액은 커지는 선순환 구조에 있다.

○ 핵심 원동력은 ‘기술력’

높은 세계 시장 점유율을 보이는 중소기업들은 그 이유에 대해 ‘집중적인 R&D 투자’(66.7%·복수 응답)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틈새시장 개척’(29.2%), ‘유일무이한 제품 개발’(25.0%) 등의 순이었다.

인천 남구 주안동의 서울엔지니어링은 제철소의 고로(高爐)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는 풍구를 만든다. 1970년대 초반에 풍구를 개발해 포스코에 문을 두드렸다가 성능 문제로 퇴짜를 맞았지만 끊임없이 기술을 개발해 결국 1988년 포스코에 정식으로 납품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30개 국가에 수출하며 세계 풍구 시장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강자가 됐다.

카지노용 모니터를 만드는 코텍 역시 기술력을 최고의 경쟁력으로 꼽았다. 사용 중 화면이 흐려지거나 꺼지면 조작 의혹이 제기되기 때문에 카지노 회사로선 손님 유치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이 때문에 코텍은 엄격한 테스트를 했고 자연히 기술력도 높아졌다.

○ 틈새시장 개척의 중요성

넷피아닷컴은 자국어 인터넷 주소 서비스를 개발했다. 인터넷 주소창에 영문 도메인이 아니라 한글로 기업 이름을 치면 그 회사 홈페이지로 이동하는 서비스다.

1999년 한국 시장에서 이 서비스를 처음 선보였다. 국내 시장 점유율 100%였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해외로 진출했다. 현재 일본, 터키, 태국, 베트남 등 14개 국가에 진출했다.

지경부는 자국어 인터넷 주소 서비스 분야에서 넷피아닷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99.9%로 봤다.

1978년에 세워진 디젠은 본래 공장 자동화 컨설팅을 하는 기업이었다. 섬유회사를 상대로 컨설팅을 하다 향후 ‘디지털 인쇄’ 분야의 전망이 밝을 것이라는 점을 파악했다. 1990년대 초부터 인쇄기를 본격적으로 연구해 1996년 산업용 디지털 프린터를 개발했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출력하듯이 현수막이나 섬유에 각종 대상을 컬러로 인쇄할 수 있는 신제품이었다.

가격은 대당 5000만 원대에 이른다. 하지만 세계에서 비슷한 프린터가 거의 없다 보니 꾸준히 판매가 늘고 있다. 지난해 세계 시장 점유율은 약 40%.

○ 세계 1위가 가져다준 선물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인한 영향에 대한 질문(복수 응답)에 응답 기업들의 58.3%는 ‘해외 수요가 줄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2위 대답은 ‘별 타격 없다’(33.3%)였다.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응답은 아예 0%였다.

김흥관 서울엔지니어링 부장은 “경기가 위축되면 고객사들이 아무래도 신뢰성이 높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을 믿고 더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중소기업들은 주로 ‘온리 원’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구매처들은 경기가 나빠도 그 제품을 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분석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 설문 결과 들여다보니

▼“매출 작년보다 는다” 87.6%

“올 수출 증가” 전망도 85.4%

“정부 R&D 지원확대를” 50%▼

세계 시장 점유율이 높은 기업들은 불황의 여파를 비켜갈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대비 올해의 수출 전망에 대해 35.4%는 ‘지난해보다 0∼10% 성장할 것’으로 답했다. ‘10∼30% 성장한다’는 기업은 29.2%, ‘30% 이상 성장’은 20.8%였다.

매출액도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보다 매출액이 늘어난다’고 응답한 중소기업은 87.6%였다. 그중 31.3%는 ‘30% 이상 매출액이 늘어난다’고 답했다.

지난해 말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7.8%만 ‘2009년에 매출액이 늘어날 것’이라고 답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세계에 통하는 기술력이 있으면 전 세계적인 불황도 비켜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부에 대한 요청사항(복수 응답)에는 2개 기업 중 1개가 ‘연구개발(R&D) 지원 확대’(50.0%)를 꼽았다. 이어 ‘자금지원 확대’(41.7%), ‘국내외 홍보 협조’(25.0%), ‘수출 정보 제공 확대’(10.4%) 등의 순이었다.

김선민 지식경제부 무역진흥과장은 “자전거용 신발, 극세사(極細絲) 클리너, 오토바이용 헬멧 등 틈새시장 분야에서 한국 중소기업이 세계 1위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들 기업이 계속 높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도 지속적으로 R&D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설문에 응한 중소기업은 평균 1987년에 세워졌고 종업원 수는 157명이었다. 지난해 매출액은 평균 803억 원이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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