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주, 또 하나의 IT버블될까

  • 입력 2009년 3월 5일 20시 53분


녹색 기업들이 증시의 스타로 떠오르면서 거품(버블)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는 몇 달째 침체에 빠져있지만 풍력, 태양광, 발광다이오드(LED) 등 그린에너지 관련주들은 수십 퍼센트 대의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경기침체 탈출의 원동력을 그린에너지 산업에서 찾고 있다.

대다수 시장 전문가들은 그린에너지 산업이 1990년대 말 급성장한 정보통신(IT) 산업에 버금가는 신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단기간에 불꽃을 태운 뒤 사그라지는 단순 테마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녹색 성장주의 현재 주가가 '적정수준'인지 아니면 '실체에 비해 과도하게 부풀어 오른 버블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회사 이름을 바꾸거나 사업목적에 '태양광 사업 진출' 등을 추가하면 주가가 상한가를 치는 모습이, 회사 이름에 '닷컴'만 넣어도 투자자들이 몰려들던 정보기술(IT) 버블 초기와 너무 닮았다는 우려도 나온다.

●투자 황무지에 부는 녹색바람

미국은 올해부터 2018년까지 신재생에너지, 그린카 등에 총 1500억 달러(약 232조 원)를 투자하고 한국은 신재생에너지, 4대강 살리기 등에 2012년까지 50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같은 정책 지원에 따라 관련 기업의 최근 주가 상승률은 가히 독보적이다.

풍력기자재업체인 용현BM의 주가는 올해 초 2만500원에서 이달 5일 3만1000원으로 51.2% 올랐고 마이스코는 136.4%나 올랐다. 태양광업체인 일진에너지는 9450원에서 1만3450원으로 42.3%, LED업체인 서울반도체는 9290원에서 2만6650원으로 186.8% 급등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9.14% 떨어졌고, 코스닥지수는 6.5% 오르는 데 그쳤다.

신규사업으로 그린에너지 사업을 추가하거나 회사이름을 바꾸는 중소형업체도 늘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인 글로넥스는 1월 회사 이름을 대우솔라로 바꾸고 사업 목적에 태양광 관련 부품의 제조·판매를 추가한다고 공시했다. 공시 당일 주가는 12.68% 올랐다.

이티맥스에듀케이션코리아는 지난해 9월 회사이름을 '이그린어지(e-Greenergy)'로 바꾸고 사업 목적에 기존 신재생에너지 사업 외에 폐식용유와 폐기물, 재활용품의 수집·판매업을 추가했다. 공시일 전후 3거래일 동안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린 에너지를 바라보는 두가지 시각

증시의 녹색 바람을 바라보는 의견은 다양하다.

녹색 성장주의 탄탄함을 거론하는 증시 전문가들은 해당 종목이 미래의 실적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아닌 확정된 실적을 근거로 주가가 오르고 있다고 강조한다.

굿모닝신한증권 조인갑 연구원은 "용현BM은 올들어 수주물량만 600억 원에 이른다"며 "국내 풍력기자재업체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0배 내외로 IT 버블 때의 닷컴기업들의 50~100배에 비해 훨씬 낮고, 글로벌 업체와 비교해도 저평가됐다"고 설명했다.

녹색사업에 진출한 주요 기업들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사업과 시너지를 낸다는 점도 성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된다. 일진에너지는 기존 정유화학 설비제조 관련 기술을 태양광 발전 장비를 제조하는 데에 이용해 빠른 시일에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실체도 없이 그럴듯한 비즈니스 모델로 투자자들을 현혹하던 벤처기업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린에너지 산업 자체가 초기 단계에 있어 정확한 주가 측정이 어렵고 일부 종목은 거품 증세가 확연하게 보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녹색 성장주의 상승세에 경계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일부 종목의 시가총액이 기업의 자산가치와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높다"며 "실적과 자산에 비해 주가가 부풀려졌다"고 지적한다.

서울반도체 등 일부 종목은 PER이 40~50배에 이른다. IT 버블 때의 일부 종목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를 둘러싸고 "미래 성장성을 감안하면 괜찮다"는 의견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에 과도하게 반영됐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은 "일부 녹색성장주는 한 주당 순자산가치를 뜻하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3배를 넘는다"며 "녹색 산업의 미래가 밝은 것은 분명하지만, PBR이 세 배면 지금 현재 자산가치의 세 배를 주고 사는 셈으로 투자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팀장은 "녹색 산업이 버블인지 아닌지는 사후적으로만 판단이 가능하지만, 지금 일부 종목의 상승세가 IT 버블 초기와 유사한 것은 맞다"며 "기대했던 만큼 미래에 시장이 커지지 않거나, 해당 기업의 독보적 경쟁력이 사라질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이서현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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