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8% 준다는데” 개미들도 채권으로

  • 입력 2009년 3월 3일 02시 57분


■ 저금리시대 시중자금 어디로

소액투자 부쩍 늘어… 작년 2배 이상 급증

우량 회사채에 집중… 기업 자금난은 여전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서모 씨(37)는 지난달 한 건설사가 발행한 A등급 채권에 2000만 원을 투자했다. 금리는 연 8%. 무엇보다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다. 이미 갖고 있는 주식과 펀드는 언제 반등할지 기약이 없고, 그렇다고 예금에 넣어놓자니 점점 낮아지는 금리 때문에 흥미를 잃었다.

서 씨는 “채권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점은 신용등급과 회사 재무 상태”라며 “앞으로 금리가 높은 회사채가 나오면 또 투자할 생각이 있기 때문에 증권사의 상품 소개 e메일을 계속 받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접어들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채권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올 들어 증권사들의 소매채권 판매액은 지난해의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고, 각 증권사 창구에는 1000만 원 이상의 뭉칫돈을 들고 오는 개인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 채권투자 대중화시대

삼성증권의 지난해 상반기 소매채권 판매액은 1조3400억 원이었지만 올해는 두 달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1조4000억 원을 넘어섰다. 금융회사들 간에 대량으로 거래되는 도매채권과 달리, 소매채권은 개인 투자자와 일반법인에서 사들이는 비교적 소액의 채권이다.

이 증권사의 정범식 파트장은 “개인 투자자 비중이 금액기준으로 40∼50%는 된다”며 “예전엔 채권은 고액자산가의 전유물로만 여겨졌지만 지금은 1000만 원, 2000만 원 단위로 투자하는 개인 고객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동양종금증권 강남본부점 오소영 차장(PB)은 “사전에 자신이 원하는 상품 유형을 예약해 놓는 고객이 많다”며 “조건이 맞는 채권이 나오면 순식간에 팔려나간다”고 전했다. 채권 판매로 인한 수익 비중이 커지다 보니 증권사 지점들이 본사에서 내려오는 판매 할당량을 저마다 많이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하기도 한다.

금융시장 불안으로 유보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은 법인들도 최근 채권 매수에 뛰어들고 있다.

HMC투자증권은 지난해 11월 66억 원에 그쳤던 채권 판매량이 올 2월에는 826억 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억대 단위로 투자하는 법인 고객들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주식형펀드에선 증시침체로 돈이 계속 빠져나가는 것과 달리 회사채 펀드시장은 자금 유입세가 뚜렷하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장기 회사채 펀드의 설정액은 지난해 말 488억 원에 불과했지만 지난달 27일 현재 1868억 원으로 급증했다.

○ 위험등급 채권은 여전히 찬바람

채권 투자 붐은 올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장기 회사채 펀드만 해도 지난해 말 정부가 시장 안정을 위해 세제 혜택을 주기로 하면서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지만 당시엔 기업 유동성에 대한 불안심리가 커서 그리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환율 효과 등으로 한국 대표기업들이 해외 경쟁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적어도 우량 기업들의 부도 리스크는 줄어들었다는 인식이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수요가 우량 회사채에만 집중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채권 열풍으로 기업들의 자금조달 사정이 전반적으로 나아졌다고 보긴 힘들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우량 채권인 AA―등급(3년 만기)은 수요가 몰리면서 채권유통시장에서 금리가 올해 초 연 7.73%에서 2일 6.62%로 낮아졌지만, BBB―등급의 금리는 같은 기간 12.04%에서 12.38%로 오히려 상승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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